한국 호랑이 전설 대모험 100 - 전국 16개 광역 호랑이 탐험기
강효백 지음 / 좋은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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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에게 '호랑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무서운 맹수이자 정의로운 수호신,

인간의 벗이자 자연의 상징으로

호랑이는 우리 전설 속에서 신과 인간,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였습니다.

저에게 호랑이를 묻는다면...

호랑이 모습의 한반도 지도가,

옛날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대여하면 인트로에 등장하는 '호환마마'가,

'호돌이'가 떠오르곤 하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부터 호랑이 '더피'가 더 친숙하네요.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호랑이.

여기 각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 전설을 한데 모은 책이 있었습니다.

호랑이의 발자취를 저도 한 번 좇아보려 합니다.

호랑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 있다.

한국 호랑이 전설 대모험 100


저자 '강효백'이 전국 228개 시군구를 직접 답사하며 전설을 찾고 정리한 방대한 기록의 호랑이 이야기.

전설과 역사가 결합되어 구전 설화와 현대 기록을 잇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며

각 지역별 전설에 담긴 인간의 사랑, 효심, 용기, 슬픔을 감동적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래동화 속, 민화 속에서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나 호랑이가 천의 얼굴을 지니며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어떤 호랑이는 나쁜 사람을 벌주는 심판자였고

어떤 호랑이는 차간 이들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었으며

때로는 사악한 요괴로

때로는 변신하는 인간으로

이 책을 통해

"호랑이는 정말로 우리 곁에 있었다"

라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우선 제가 사는 '서울'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울수도권오늘날 대한민국의 심장부이지만, 옛날에는 호랑이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의 전설은 두려움과 함께 지혜와 유머가 살아 있었습니다.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를 속이고, 현명한 며느리가 범을 물리쳐 마을을 구하는 등

단순한 맹수가 아닌 삶의 스승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중 <흑석동 범바위 전설 - 호랑이의 슬픈 기다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와 도로가 가득한 서울 동작구 흑석동이지만 예전엔 넓고 고요한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강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강가엔 거칠고 울퉁불퉁한,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깊은 구멍이 뚫려 있는, 마치 슬그머니 웅크린 호랑이 모습과도 닮아 '범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었는데...

때는 조선시대 중엽.

가난하지만 마음씨 곧은 한 낚시꾼이 이른 새벽 낡은 낚싯대를 메고 한강변으로 갑니다.

아이 둘 딸린 집은 요 며칠 쌀이 떨어졌고, 부인은 병치레 중이기에 무엇이든 잡아야했던 그.

한참을 기다리니 눈이 부실만큼 반짝이는 커다란 금빛 잉어를 잡게 된 것입니다.

기쁨과 안도도 잠시,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모래바람과 눈발이 몰아칩니다.

그리곤 깊은 슬픔을 품은 듯한 눈동자를 지닌, 움직임엔 위엄과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는 호랑이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앞발을 천천히 내미는 것입니다.

으르렁거리지도, 날뛰지도 않고 조용히 낚시꾼과 잉어를 번갈아 바라보는 호랑이.

하지만 두려웠던 낚시꾼은 도망을 치다 범바위 속에 숨게 되고

호랑이는 바위 앞에 조용히 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을 바위를 바라보게 됩니다.

하루, 이틀, 사흘...

결국 그는 바위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 잉어는 호랑이가 100년 전 인간으로 살던 시절, 사랑하던 아내의 환생이었단 말도 있소."

"범은 오직 그 잉어를 돌려받고 싶었을 뿐이라지."

호랑이의 눈빛이, 진실을 아무도 모르지만...

한강을 걷다 잠시 멈춰 섰을 때, 당신 귀에 호랑이의 낮고 슬픈 숨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속 어딘가엔 아직도 금빛 잉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눈빛이 아련히 그려지곤 하였습니다.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중원 지역, 교통의 요지이자 문화의 중심지였던 세종과 충북.

이곳의 호랑이는 길을 열어 주는 안내자이자, 효자와 선비의 충정을 시험하는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두려움 속에서 용기와 지혜를 배웠는데...

<호랑이가 지킨 효자, 김사준 - 세종의 전설>을 이야기해 보자면...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정치 참극, 계유정난의 생존자였던 김사준.

그는 권력과 명예 대신 '효'를 선택해 다섯 형제 중 누구보다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김백곤이 병상에 누운 채

"사준아... 연근이 먹고 싶구나..."

이 한마디에 김사준은 한겨울 연못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를 하는데

"연못이여 열려라... 연근이여 솟아나라... 아버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 생명도 바치겠다..."

그 정성을 알았는지 일곱 번째 날, 해가 지기 직전 연꽃의 줄기가 떠올랐고 연근을 들고 아버지에게 달려갑니다.

그 후 아버지의 병세는 호전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역시나 김사준은 예법을 지켜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무려 3년간 시묘살이를 시작하는데...

거대한 호랑이가 조용히 김사준의 옆에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산신령께서... 내 마음을 들으셨구나..."

여름이면 벌레를 쫓아주고, 겨울이면 추위를 막아주었던 호랑이.

시묘살이를 마친 날, 호랑이는 조용히 뒷산 너머로 사라졌는데...

지금도 세종시 전의면 양곡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합니다.

"진심이란, 결국 하늘도 짐승도 움직인다"

이 진정성 있는 이야기...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호랑이를 단순한 옛이야기로가 아니라,

한국인의 혼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토템으로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바람이 저에겐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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