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인생 - 쓰레기장에서 찾은 일기장 148권
알렉산더 마스터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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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공책들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누군가 평생에 걸쳐 쓴 100권이 넘는 일기장이라면?


이 물음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100권이나 넘게 기록된 다른 사람의 삶 이야기.

그 어떤 책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발견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의 삶을 주제로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전기를 탄생시켜온 작가 '알렉산더 마스터스'

그는 이 질문에 가장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 저도 한번 보고자 합니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어느 평범한 인생의 기록이

한 권의 빛나는 예술이 되기까지


보잘것없는 삶을 살고 있다며 때때로 한탄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가닿는 특별한 여정


폐기된 인생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2001년 케임브리지의 어느 공사 현장 옆 쓰레기 컨테이너로부터였습니다.


친구 '리처드 그로브' 교수가 건축 부지에서 놀다 컨테이너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뭔가 주의를 끈 것이 있었으니...!

부서진 샤워부스 바닥에 뭉텅이로 쌓여 있고

떨어져나온 문짝 주변 틈새에 처박히고

깨진 벽돌과 슬레이트 위에서 바람에 펄럭거리는 것!

한아름의 책들이었습니다.

잡석더미 위에 보란듯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던 이 책들, 아니 148권의 일기장은 

앞표지에 왕실 문장이 새겨진 노트부터 아무 무늬 없는 고급 양장 노트, 싸구려 연습용 노트패드와 작은 포켓북까지 

다양한 시기에 생산된 다채로운 종류의 노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같이 발견했던 다이도는


"커모드가 이사할 때였는데, 엄청나게 귀중한 소장본들, 전부 초판에 전부 저자가 그에게 서명해준 책들을 상자에 꾸려두었지. 그런데 어쩌다 실수로 이삿짐 인부가 아닌 쓰레기 수거 인부에게 그 상자들을 줘버렸고, 그 소중한 개인 문고는 사라졌어. 다시는 그 책들을 보지 못했지. 그 쓰레기 컨테이너 안의 책들도 똑같았어. 사생활이 부당하게 침해당한 느낌. 쓰레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느낌이 확연했어. 주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 갖겠다는 것과는 별개였어. 그저 구해내고 싶었던 거야. 누가 그 책들을 쓰레깃더미에 버리고 사라진 지 고작 몇 분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 책들은 살아 있었어." - page 16


일기의 주인을 찾고 싶었지만


사람은 자신에 대해 5백만 단어에 달하는 글을 쓰면, 막상 자기 이름은 밝히지 않을 수 있다.

성별도.

일기에는 이름이 무엇이고 집이 어디인지 하는 당연한 신상을 적지 않는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그저 살아 있는 '나'일 뿐이다. - page 19


누구나 그렇듯 일기장에는 자신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만 막상 자신의 신상 정보는 굳이 밝히지 않기에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 일기장을 발견했던 다이도가 췌장에 10센티미터의 신경내분지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는 이 일기장의 주인을 찾는 일이 알렉산더 마스터스, 그의 몫이 되었습니다.


일기장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셰익스피어 권위자이자 작가"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십 대 때 이미 최소 세 편의 소설을 썼고

온종일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그림이 반 고흐에 필적한다고 확신했고

피아노를 괜찮게 친 

월경에 대한 내용을 통해 '여자'라는 것과

1958년 케임브리지 공공도서관에서 6개월간 기간제 사서로 일했던 기록 등을 통해

확신을 하고 다가가면 금세 틀린 것으로 판명이 되고

새로운 정보로 옆길로 새는 등

여럿 우여곡절 끝에 일기장의 주인에게 다가가는데...


마침내...!


비록 젊은 날 품었던 희망과 열정 가운데 무엇도 이루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전심전력을 다한 단 한 가지

평생에 걸쳐 묵묵히 써내려간 '일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된 '로라 프랜시스'

그녀로부터 우리는 평범하다고 느껴졌던 이 삶도 그 무엇보다 특별하고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도 소중하고도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토록 흥미로울 줄 몰랐습니다.

한 가지 꼽아보자면

일기 주인의 키를 밝히기 위해 '글의 기울기'를 가지고 


S를 말년 일기글 한 행의 평균 길이라 한다.

A를 이 행이 수평선과 이루는 평균 각도라 한다.

S가 '로라의 전완 길이에 거기서부터 종이와 닿는 펜 끝까지의 거리를 더한 것'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의 할선을 나타낸다고 하면, 로라의 키는 이렇게 계산할 수 있다.


6 × 0.68 × S ÷ (2 × sinA) 


(중략)


몸을 쭉 편 로라 = 6 × 0.68 × [S ÷ (2 × sinA)]

=6 × 0.68 × [0.13 ÷ 0.0698]

=7.6


7미터 60센티미터다.

나는 종이를 찢어내 불속에 내던졌다. - page 188 ~ 190


이런 노력과 집요하게 파고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사실


VJ : 그녀가 살해당하지 않았고 스파이나 뛰어난 과학자도 아니고 대단한 비밀 따위는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녀에게 중요한 특성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면?

AM : 하지만 그거야말로 요점입니다. 그게 최상의 결과죠.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는 한 메리 아님은 귀중합니다. 그녀의 평범함, 그리고 그 평범함에 대해 그토록 많이 썼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흥미로운 겁니다. 유명인이라면 완전히 김이 새버리겠죠.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인물이나 정치가나 팝스타라면, 특징 없는 평범한 이웃이 아니게 될 테죠. 그러면 난 큰일이고요. - page 167


정말 평범했기에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존 윌리엄스 소설인 『스토너』가 떠올랐습니다.

평범이 쌓여 만들어낸 비범함...

또다시 잔잔하지만 뜨거운 감동에 젖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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