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온난화로 인한 산불과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날씨와 계절이 사라지고 삶이 위협받을 지경으로 요동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장에만 몰두할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과거처럼 살기 좋은 지구로 되돌릴 수 있을까...?
미래의 과학자들은 인류에게 생태감수성에 관한 언어가 빈곤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 언어들을 풍부하게 사용할 것을 처방했습니다.
생태감수성은 종을 뛰어넘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위하는 마음으로
다른 종을 이해할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원인이 되곤 하는데...!
저자는 생, 태, 감, 수, 성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로 묶인 단어들을 통해 인간과 다른 생명의 관계를 질문하고 그 연결고리를 복원하고자 하였습니다.
생태계가 생물과 생물, 생물과 무생물, 무생물과 무생물의 끈끈한 관계이듯 생태에 관련된 단어들 또한 서로 물고 물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며 의미가 달리 보이기도 하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나무가 주변 환경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형태를 바꾸더라도 같은 종이라면 유전자 정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이 단어도 그 속성이 변하지 않은 채로 주변 단어들과 상호 작용하며 각자 존재의 이유를 밝힙니다.
...
저는 미래의 사람들이 바라는 삶,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며 자연에서 힘을 얻고 그 힘을 다시 자연에 돌려주며 상생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순환의 마음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아름다운 지구가 되살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page 10 ~ 12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필자에게는 종종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나무를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나무가 나타내는 몸짓을 단순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렇게 나타나는 특징을 하나의 종으로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나무는 여전히 나의 대상에 그칠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나무가 종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 나무와 나는 모종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 그 나무는 이미 '그것'이 아니고 '너'가 됩니다. '너'는 나와 마주 서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고 나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나-그것'에서 '나-너'의 관계가 될 때 비로소 나무도 자신의 장서를 내보여줍니다. 그러면 나무의 상처에 나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 page 277
'나-그것' 관계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지만
'나-너' 관계는 다른 존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상호 작용을 의미하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상호 의존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과 행동이 지구와 그곳에 사는 생명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깊이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선 '나-너' 관계로 마주해야 함을 새삼 배우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어쩌다 어른 10주년 특집>에서 '최재천' 교수님 편을 보았었는데...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증은 차고 넘치나 마음으로는 외면하는 사건인 '기후 변화'에 대한 강의를 해 주셨는데...
이로 인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방아쇠는 누가 당겼을까?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해양 생물의 9퍼센트인 1550여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멸종 위기를 겪는 해양 생물의 최소 41퍼센트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으니
방아쇠를 당긴 이가 바로 '인류'라는 것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요.
다른 생명과의 공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당장이라도 환경보호를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무의사 우종영 씨도,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도 우리에게 강조 또 강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발언이 그 어느 때보다 일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이자로만 삶을 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