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한 줄기 불빛이 빛난다.
한 손에 손전등을 든 남자가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인적 없는 지하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간다. - page 15
정보원에게 받은 도면을 따라 103이라는 숫자가 쓰인 문으로 들어간 이 남자.
맨 안쪽에 타일로 마감된 하얀 실험대들이 있고 현미경이며 시험관, 한밤의 방문자로선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책장 앞으로 간 그는 두툼한 문서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드디어 관심 있는 파일을 찾아내는데...
<변신 프로젝트>
이 엄청난 발견이 가져올 파급과 폭로되면 뒤따를 폭발적 반응을 생각하니 만족스러운 작은 웃음소리가 숨길 수 없이 새어나옵니다.
그런데...
돌연 오른쪽에 있는 검은 문에서 어렴풋한 소리가 들립니다.
무언가 스치는 듯한 소리.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두 손, 이어서 인간과 흡사한 얼굴이 식물 섬유들을 헤치고 솟아난다. 얼굴은 처음에는 방문자를 보고 놀랐다가 이내 그를 향해 살갑게 활짝 미소 짓고 의미심장한 윙크를 던진다. - page 17 ~ 18
진학 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
그는 극비리에 진행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아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변신 프로젝트는 어머니 자연을 모방하여 우리 자신을 다시 다양화하려는 것입니다. 웰스 장관이 말씀하셨듯, 세 가지 인간 아종을 창조하여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맞닥뜨릴 시련에 대처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각 아종은 혼종, 다시 말해 인간과 다른 종의 이종 교배의 결과물입니다. 첫 번째는 날아다니는 인간으로, 저는 영어에서 따온 <에어리얼Aerial>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인간과 박쥐의 혼종입니다. 두 번째는 땅을 파는 인간이며 영어로 <디거Digger>라는 이름입니다. 이는 인간과 두더지의 혼종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헤엄치는 인간, <노틱Nautic>은 인간과 돌고래의 혼종입니다. 이들 명칭을 선택한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에어리얼, 디거, 노틱, 각 혼종의 첫 글자를 모아 보면, 우리 세포 깊숙이 새겨진 암호, 생명의 비밀인 ADN이 됩니다.」 - page 29 ~ 30
(이 대목에서 저 역시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연구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이른바 <특종>이라 부르는 것으로 유명했던 마르티네스 기자로 인해 밝혀지게 되었고
반대론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연구의 든든한 지원자인 프랑스 연구부 장관 뱅자맹 웰스의 도움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하게 된 알리스.
결국은 뱅자맹 웰스가 내 목숨을 구한 셈일지 몰라.
그는 내게 국비로 우주 비행사 훈련을 받게 해줬지.
난 조용히 일할 수 있을 게 분명한 성역에서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 거야. - page 70
우주 정거장에 도착한 그는 체류자 다섯 명의 생물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미 알리스가 하는 일에 대해 대략 알고 있었던 그들은
「사실상 키메라를 만들어 내려는 거네요.」 시몽이 말한다.
「키메라는 신화 속 동물이죠. 여자의 몸에 물고기 꼬리를 지닌 세이렌이나 남자의 상반신에 말의 하반신을 지닌 켄타우로스처럼.」 알리스는 학자다운 투로 말한다. 「하지만 혼종은 기존에 있던 두 종의 혼합에서 탄생하고, 분리된 부분이 없어요. 세포핵 중심까지 전부 융합되니까.」 - page 80 ~ 81
(아하! 그래서 책 제목이...)
그리고 저자는 우리에게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 속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데...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는 게 구인류를 멸망시킬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는 생각은 해봤습니까?」 시몽이 묻는다. - page 81
그러던 중 3차 대전이 발발하여 지구는 핵전쟁으로 파괴되고
우주에 머물던 알리스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갖은 우여곡절 끝에, 고농도의 방사능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3종의 키메라 배아를 들고 지구에 귀환하는 데 성공한 알리스.
그리고 이들은 무사히 탄생하게 됩니다.
이들은 새로워. 이들은 순수해. 아직 인간 사회에 물들어 타락하지 않았어. 자기들이 어떤 세상에 내려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도 이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을까? - page 211
3종 키메라는 공중의 왕 헤르메스, 자하의 왕 하데스, 바다의 왕 포세이돈처럼 각자의 왕국을 만들기 시작하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믿을 수 없어.
내가 만들어 낸 새로운 존재 모두 완전히 내 손을 벗어났어.
그들은 나를 위협하거나 나를 구해.
내 말을 따르거나 내 허를 찔러.
나는 그들이 다르기를 바랐어.
그들은 자율적일 뿐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나아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어.
구세계는 더 이상 없어.
신세계가 나는 불안해. - page 595 ~ 596
과연 새로운 대체 인류로서 이들의 운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마냥 소설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꼭 읽고 되짚어야 했습니다.
특히나 옮긴이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책에서, 그리고 여러 전작에서 그렸던 미래의 모습이 머지않아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독보적인 우월종의 지위를 점하고, 물질적 성장과 기술적 발전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인류의 영향력을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아포칼립스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너무 늦기 전에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맞이할 위기와 그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면서, 그는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결국 스스로 불러온 위기를 해결할 방도는 인간의 손에 있다고. - page 612 ~ 613
작가는 우리에게
미래에 닥칠 위협을 바꿀 힘이 현재에 있다
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난다고 했던 이 소설.
보다 현명한 대안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지구의 역사에서 사소한 우여곡절에 불과해요. 결국 생명은 길을 찾을 거예요. 인류의 정신은 물질적 상태를 넘어서서, 어떤 종족에 깃들어 있든 살아남을 거예요. 사피엔스든, 노틱이든, 디거든, 에어리얼이든, 아홀로틀이든.」 - page 602 ~ 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