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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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단어에 반응을 하여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 소설.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2010년에 처음 선보인 이 소설은 출간 당시에는 상당히 인기를 끌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되었으나, 몇 년이 지난 후로는 사실상 묻혀 있던 책이었다고 합니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한국어판도 진작 절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도 해당 책의 일본어판은 현재 종이책으로 유통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작품을 접한 해외 에이전트가

"반드시 이 책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간행하고 싶다"

는 의지를 품었고, 그 바람대로 13년 만에 새로이 출간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2024년 영국 도서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야말로 '헌책방'을 소재로 한 이 소설과 더없이 어울리는 스토리를 지녔기에 더 의미가 있는 이 책.

저도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여기는 책으로 된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푹 쉬고 나서 출항하면 돼."

손 뻗으면 수많은 책이 잡히는 오래된 헌책방에서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건네는 인생의 휴가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스물다섯 살 다카코.

사귄 지 1년 된 연인 히데아키가 갑작스럽게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는 이별 통보를 받게 됩니다.

충격으로 회사도 그만두고 폐인이 되어 집에 틀어박혔는데, 어느 날 밤,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내버려두었던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낯선 번호와 음성메시지.

"다카코, 잘 지내니? 나야, 사토루 삼촌이야. 지금 서점에서 전화하는 거야. 나중에라도 괜찮으니까 연락 좀 줘라. 어이쿠, 손님이 왔네. 그럼 이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이후로 벌써 얼추 1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외삼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세니 관리비니 무시 못 하지? 여기 오면 전부 공짜야. 뭐 서점 일을 좀 도와주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진보초 거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여기 머물며 일을 도와달라는데...

책이라고는 학교 수업 때 읽은 게 전부였던 다카코에게 갑자기 헌책방에서의 일을...?

하지만 돈도 떨어지고 더 이상 머물 곳도 없는 상황에 처했기에 마지못해 삼촌에게, 모리사키 서점으로 향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지나간 아픈 기억은 어쩌면 좋은지, 그런 것들이 서로 얽혀 잠이 오지 않았던 어느 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아 산더미같이 쌓인 문고본 앞에 눈을 감고 손을 뻗어 한 권의 책을 뽑게 됩니다.

『어느 소녀의 죽음까지』

분명 지루해서 바로 잠들어 버릴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책에 완전히 빠져들고 하얗게 밤을 지새운 것이 아닌가!

다음 날 외삼촌과 그 책에 대해 한바탕 얘기를 나누며 지금까지 전혀 접점이 없는 줄 알았던 사람과 불현듯 한 가지 일로 이어지는 기쁨,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잠들어 있던 독서 욕구가 팡!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래된 책들과 느릿느릿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상처를 치유해가고 다시 삶을 일으킬 동력을 얻으며 나아가는데...



잔잔하면서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주었던 헌책방으로부터의 이야기.

읽는 동안 위로의 시간이었습니다.

소설은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무대로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보초 역을 중심으로 150개가 넘는 서점들.

진보초 거리에서 60년째 매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벌어지는 '헌책 축제'까지.

소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실제 경험할 수 있기에 오감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활자기피 현상과 대형 중고서점의 영향으로 헌책방들이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세계를 떠나지 않는' 이들이 있었기에 따뜻하고도 편안한 장소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고마워. 이 서점은 결코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장소는 아니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ㅇ앞으로 몇십 년이든 해나갈 수 있어. '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두둥실 나아갈 뿐이다.' 그 말처럼 나는 이 서점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 page 91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이 문구.

"그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우연히 책을 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이 독서가가 되는 거구나." - page 69

나의 독서 인생의 시작이 되었던 책을,

지금도 마주하고 있는 책들,

앞으로 마주할 책들로부터 진정한 독서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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