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여름날의 추억이 있었습니다.
여름옷을 꺼내 입으며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내 몸에 대해 고민하고,
여름에 만나 사랑한 연인과 이별하면서 그동안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잃어버린 진짜 내 모습과 마주하며,
이 책을 계약한 날 백화점 과일 코너에서 산 샤인 머스캣을 먹으며 나한테 잘해주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 생각하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예찬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애호하는 마음'과 그 마음이 가능케 한 작은 변화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또 그러한 변화조차 기어이 여름의 공으로 돌리고야 마는 그녀의 지극한 '여름 사랑'은 저에게도 울림을 선사하였는데...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손 닿는 것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싸늘한 마음은 뜨거운 계절조차 차갑게 만들어버린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그 어디서든 여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 page 116
그녀의 위트도 엿볼 수 있었던 이야기.
수영을 배우고 싶지만 수영을 못하고, 그러면서도 결코 수영을 배우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
그 이름도 '수수수'.
언젠가 수영할 수 있게끔 서로를 응원하는 모임이 아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수영을 배우지 않게끔 서로의 발목을 잡는 모임이라니...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저도 수영을 하고 싶지만 물이 두려운...
왠지 가입 가능하지 않을까?!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
이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 같다는 허무함이 밀려들 때 그녀는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말 못 하는 생명이지만 물을 주고, 분갈이하고, 햇빛을 쏘여주면서 적어도 애들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는 그녀.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잎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 page 92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아."
그러니 그대도, 아니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니 존재 그 자체가 소중함을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저에게 여름은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였는데 이렇게 여름의 순간들을 마주하니 뜨겁기만 했던 햇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으며 여름의 찬란함을 느꼈었는데...
그 느낌이 이제 눈부심으로 저의 여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문턱에 마주한 요즘.
덕분에 이번 여름엔 나만의 여름을, 아니 여름의 나를 마주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