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독서선동자 중 한 분인 그녀.
자신을 '활자중독자'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었고
오직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썼고
그렇게 책은 그녀의 여가였고 취향이었고 삶의 일부였습니다.
자신의 멘탈을 다독이기 위해 서평을 올렸다지만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덕분에 제 머리와 가슴이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부 '그대가 읽지 않아 내가 읽는다'에서는 책들의 의인적 매력, 그리고 서재형 인간의 탄생과 그 일상에 대해
2부 '시대의 경계를 읽다'에서는 책으로 확장되는 인식의 지평을
3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에서는 작가들이 묘사하는 삶의 조각들, 그리고 그것에서 추출하는 생활인으로서의 일상적 가치에 대한 사색을
4부 '우리는 아름다울 수 있을까'에서는 책에서 발견하는 미적인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서평집 겸 에세이와는 달랐습니다.
담담한 고백이, 사색이 묻어져 있어 공감을 끌어냈었고 '책'이란 단순한 물성이 아니었고 작가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인생사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대하는 자세를, 그리고 나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서재를 정리할 때마다 적지 않은 책을 기부하는데, 기부 목록에 휩쓸리지 않고 오랜 세월 함께하는 책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중에 천경자의 『한』.
누렇게 변색되었는데도 사람처럼 운명이 있어 인연이 닿았는지, 아니 인연이었던 겁니다.
'인연'이라는 거...
세상이 거미줄 같다. 인연이란 강철보다 강하고 고무줄보다 유연하다. 잊었다고 잊힌 것이 아니고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단지 모를 뿐. - page 58
수십 년이나 자리를 지켜왔다는, 책을 읽으면 글이 쓸쓸해 가끔 책갈피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는 천경자의 『한』.
그 책이 참 궁금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작가,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년 스웨덴 남부 시골의 농가에서 태어나 명랑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독립적인 성격인 그녀.
글짓기를 잘해 13세가 되던 해 지역신문에 에세이가 실리게 되고 16세가 되던 해 사주이자 편집장이 그녀를 수습기자로 채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딸 또래인 이 수습기자를 노련한 솜씨로 유혹했고 린드그렌이 18세가 되던 해 임신하게 됩니다.
당시 스웨덴은 미혼모의 사회적 차별이 심했지만 그녀는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탁모에 아기를 맡기고 비서일을 하게 됩니다.
24세가 되던 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에게 창작동화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말괄량이 삐삐』였던 것이었습니다.
평생 어린이, 미혼모, 여성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던 린드그렌.
"그 누구도 혼자 남아 슬피 울면서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된다"
는 그녀의 말은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라는 한글판 제목 책과도 어울렸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최말자 할머니가 떠올랐다는 저자.
18세 때 성폭력에 저항하다 남자의 혀를 물어 유죄판결을 받은 그녀.
당시 판사는 그녀에게 가해자와 결혼할 것을 종용했고 여자가 유치장에 있는 동안 남자는 그녀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합의금도 받아갔다는데...
56년이 지난 할머니가 된 그녀는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최말자 할머니의 의식화된 과정을 보면 사건 당시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63세가 되어서야 중고등과정을 공부하고 다시 방통대에 진학, 75세의 나이에 논리적으로 무장하고 세상과 투쟁을 선포한 점이!
린드그렌과 최말자 할머니의 공통점은 자발적인 의식화였다. 최말자 할머니의 재심은 기각되었다.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할머니의 기사를 보았다. 린드그렌이 살아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 page 88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읽으며 여전히 작고 외로운 존재들을 위하여 연대와 용기를 배워야겠습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두 번 읽었다는 최연호 교수의 『기억 안아주기』.
이 책은 뇌과학으로 출발해서 개인의 경험을 열거하고 사회적 현상과 사례를 들어 치유를 이끌어낸 나쁜 기억에 관한 치유서라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하니 어떤 매력일지, 읽어나가는 순간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고 하니 참 궁금하였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그리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새삼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었음을.
그래서 저는 오늘도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마법의 여권,
당신이 꿈꾸는 곳으로 어디든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