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엄마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시작됐다. - page 5
평생 엄마와 둘이 살아왔던 '하지오'.
엄마의 병환으로 평생 있는지도 몰랐던 아빠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떠밀리듯 아빠가 산다는 번영으로 오게 된 지오.
여덟 시면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외지인의 인사는 잘 받아 주지도 않고, 당근마켓에 올라온 건 경운기와 엔진 분무기뿐인 이곳.
뿐만 아니라 아빠라는 사람도, 아빠와 함께 사는 아줌마도, 마을 사람들도, 체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유도부까지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끔찍한데...
기차역에서 아빠라는 사람을 마주한 순간, 느낌이 왔다. 나한테는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그리고 저 사람과 함께 보낼 시간들이 전쟁 같을 거라는 걸.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총알을 장전하고 아빠라는 사람과의 전쟁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그 아이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 page 9
독심술을 한다고 말하는 유찬이라는 아이.
그리고 자꾸만 마주하게 되면서 마음에 걸리는데...
이유 모를 화재 사건으로 하루아침 부모님을 잃고, 장례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듣게 된 '유찬'.
그날 이후,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에 시달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공부에만 몰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마중하러 기차역에 갔었는데...
삐---
휘청거릴 만큼 갑작스러운 이명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오 년 전 그날. 그 일이 있기 전 평범했던 날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것들이 내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도 전에 여자애가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고,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고 만다. - page 14
전학생으로 온 하지오.
오직 이 아이만 곁에 있다면 다시 평범했던 날들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하지오를 찾지만 조금씩 그 아이의 마음을 알고 싶고...
가족에 관한 아픔이 있는 두 아이가 열일곱 여름 서로를 우연히 발견하고, 굳게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 나가게 되는데...
나는 유찬의 가슴 언저리 위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동그란 공이라도 잡은 듯 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게 사과라도 된다는 듯 한 입 베어 먹는 시늉을 했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뭐?"
"네 가슴에서 자꾸만 널 괴롭히는 그 못되고 뜨거운 여름을 내가 콱 먹었다고. 이제 안 뜨거울 거야. 괴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야. 두고 봐."
유찬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에 맞은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하고서. 좀 바보 같은 표정이라 웃음이 터졌다. 내가 깔깔대고 웃으니 반대편에서 주유와ㅏ 새별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내가 그랬잖아. 지켜 주겠다고. 네 여름 한 입 먹은 거, 그것부터 시작이야." - page 186
찬란하게 빛났던 이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뭉클하기도 했고 미소도 지어졌고...
간만에 책을 덮고 "좋다!"란 느낌에 사로잡혔었습니다.
그리고 햇살을 마주하게 되면 이 소설이 반짝이며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유찬과 하지오의 아픔을 알아보면서 알게 된 것
"하나를 지키려면 하나를 잃기도 한대. 엄마가 나를 지키려고 아빠를 잃었던 것처럼. 근데 아빠는 엄마를 잃었는데 유도를 지키지 못했대. 지킨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두 개나 잃은 거지. 억울했을 것 같은데 코치님이 그러는 거야. 선택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고." - page 139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
그 선택으로 인해 아픔을 겪더라도 증오나 냉소가 아닌 다른 태도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랬을 때 내 세상이 정말로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
놀라운 건 이런 거다.
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그걸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 page 171
덕분에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찬란함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