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분식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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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김재희' 작가.

개인적으로 낭만과 욕망의 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가 탐정으로 활약했던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로부터 작가님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작품은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최근에 흥미로운 사연을 찾는 무지개 무인 사진관》에서 독특한 힐링소설로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었었는데...

이번에도 색다른 힐링소설을 들고 다시 돌아왔으니...

믿고 읽는 작가님의 작품들.

이번엔 어떤 따뜻함을 선사해 주실지 기대되었습니다.

사장님의 음식에 깃든

사연과 추억이

포근한 위로로 다가온다!

유미분식


유미분식 사장님의 부고 소식.

초대장을 받은 단골손님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분식집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분식집 사장님의 딸 유미가 그들에게 추억의 음식을 건네며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공유하게 되는데...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우던 바쁜 평범한 은행원 '연경'이 고객인 현석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어느덧 차분하던 연경은 싸움꾼 중년 여성이 되었고 다정하던 그는 차가운 남편이 되었습니다.

10년 전 현석과 처음 만나던 풋풋하고 아련한, 그 달달한 연애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연경.

과연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우리 정식으로 만나기 전에 여기에서였던가 밥 먹었던 것 같아."

"여기가 거기 맞아. 보미 아빠, 우리 나가서 이야기하자." - page 36

유미분식 돈가스를 좋아하던 어린 지아가 어느 날 실종되었습니다.

지아의 엄마 '영순'은 유미분식 사장인 경자가 실수로 결정적인 제보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뒤 유미분식에 발을 끊게 됩니다.

사장님의 부고 소식으로 다시 찾은 분식집.

"내가 그간 여기 유미분식에 와서 속상한 게 있어 쓴소리 하려 했는데 안 되겠어요. 그냥 음식 맛만 보고 갈게요. 사장님도 이미 돌아가지고, 내가 따님 보고 무슨 소리를 하겠어."

유미는 깜짝 놀라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기... 그러면 아직도..."

영순은 고개를 저었다.

"지아 3개월 만에 아동 시설에 있는 거 데려왔어요." - page 56

그리고 지아와 함께 돈가스를 먹게 되는데...

인성이 개떡이어서 '개떡 남편'은 아내가 병에 걸리자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다시 살아난 사랑으로 지극하게 간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현실 앞에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게 된 그.

그 시절 술을 끊고 힘들 때마다 종종 유미분식에 들러 음식을 시키고 쿨피스를 얻어 마셨습니다.

"아, 안 됩니다. 이제는 술 끊었어요. 누운 아내 눈 보고 다짐한 겁니다. 다시는 안 마셔요. 쿨피스 조금만 더 주십시오."

"그래요."

엄마는 막걸리 대신 개떡을 내와 권했다.

"이거 좀 더 들어요."

"흐흑, 고맙습니다, 사장님." - page 80

중학생 시절 왕따를 당해 은둔형 외톨이가 된 '대호'.

동창인 유미분식 사장님 딸 유미는 대호가 다시 세상에 나오도록 도와주지만 쉽지만은 않기에...

"떡튀순 세트 아니라 좀 그런가? 그거만 좋아하잖아."

대호가 탕수육을 먹다가 사레가 들렸다. 유미는 콜라를 따라주었다.

"아니, 그 음식이 가장 빨리 살 수 있으니까. 사람들 얼굴 안 보고 얼른 사서 집으로 올 수 있으니까 산 거야."

"헤에, 정말 그 이유뿐이야"

"아니, 맛있기도 해." - page 100

사장님의 부고장을 받고 다시 찾아온 유미분식.

대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린고비 같고 괴팍한 건물주 '국씨 아재'는 새벽에 소불고기덮밥을 주문하게 됩니다.

분식 사장 경자는 다리를 다친 그가 식사도 못 하는 게 안타까워 배달을 해주는 모습이 유미에겐 불만이었는데 어느 날 경자가 위험에 빠질 뻔할 때 국씨 아재가 나타나 뜻밖의 일을 하는데 왜 그랬을까...

"허엉허엉, 10년 전 5층에서... 다리가 불편한데... 자존심에 아무에게도 부탁을 못 하고... 하루 종일 쫄쫄 굶다가..."

"그래요, 다 털어놔요. 왕년에 내가 얼마나 남자들 말을 잘 들어줬는데요. 지금은 주변에 한 명도 없지만."

"그런데 여기 유미분식 사장님헌테 새벽에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를 걸어 부탁했는데, 소불고기덮밥을 만들어... 날 살리신 겁니다... 으허허헝..." - pageg 141

항상 대박을 꿈꾸던 야심 많은 청년 '순기'는 사기와 사업 실패로 인해 좌절하고 맙니다.

그래서 본가로 들어가 엄마와 함께 살아가면서

"예전에 치즈라면에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넣어서 사장님이 끓여주셨죠. 제가 운동하느라 다이어트 한다고 라면을 먹고 싶은데 망설이면요. 근데요, 그게 그렇게 보양식처럼 몸에 잘 들어갔어요. 힘도 나고요. 돌아가신 엄마도 제가 라면 끓여달라면 쇠고기나 김치를 넣어서 끓여주시곤 했거든요. 한번은 바쁜데 굳이 밥 먹고 나가래서 빨리 라면이라도 먹고 나가려는데 엄마가 뜨거우면 입안 화상 입는다고 찬물에 냄비째 넣어 휘휘 돌려서 식혀주셨는데 정말 하나도 안 뜨거웠어요, 쿡쿡."

말을 마치고 라면을 입에 넣던 순기가 목이 메어 젓가락 든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고였다.

"엄마가 저를 정말로 사랑하셨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이렇게 귀여운 손녀 못 보여드린 게 한이에요." - page 184

그리고 경찰시험 준비생이었던 '미성'은 유미분식 사장님의 부탁으로 유미분식에 침입한 범인을 잡게 되고 사장님이 만들어주시던 어묵탕으로 몸과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경찰이 됩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사장님의 부고장을 받았지만 미성에게만은 뭔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강 경장님,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는 비밀이 있습니다. 부디 꼭 오셔서 그 비밀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10년 전 추억의 분식집에서 온 초대장도 새로웠지만 비밀을 풀어달라니...!

과연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추리소설가답게 이 소설에서도 자기만의 반전을 넣었습니다.

잔잔한 파동으로 어렴풋이 전해졌던 온기.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겐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 무엇일까...?

그 음식은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아련히 추억 속에 잠시 머물러보기도 했었습니다.

맛은 그만큼 과거 추억을 소환하는 가장 일등 공신입니다. 혀에 감도는 그 맛들은 우리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그때 받았던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데이트를 할 때 먹었던 음식들이나 친구들과 먹었던 음식들이 열정 있고 가슴 벅차던 시절의 마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던 때에 먹었던 음식은 지금도 힘들 때 찾게 되고 에너지를 솟게 만들어 줍니다. - page 226

저는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음식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내가 해보지만 그 맛이 나지 않는...

갑자기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졌습니다.

오늘은 엄마에게 찾아가 따뜻한 한 끼 얻어먹어야겠습니다.

책을 읽고 가슴 벅차 눈물도 났었고 입가에 미소도 났었고...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들고 오실지 그때까지 이 감동 곱씹으며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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