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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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 동화에서 용은 왜 공주만 잡아가는 걸까?

전래 동화의 여주인공들은 집 떠났다 하면 죄다 숲으로 가는 걸까?

아니, 왜 여주인공들은 모두 곤경에 빠지는 거지?

어릴 적 읽었을 때 그러려니~ 하면서 읽었었는데...

어?

이 질문을 마주하니

'이들은 왜 그런 걸까요?'

궁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 전래 동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아니 전래 동화를 다시 새롭게 해석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를,

그리하여 전래 동화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내용을 낱낱이 밝혀서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내용과 이제 버리고 새로 써야 할 내용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한다고 하였습니다.

새롭게 조명된 전래 동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마주하게 될지 기대되었습니다.

낯선 만큼 매혹적인,

그 이야기의 숲길로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살은 글이며, 글은 결코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글은 끊임없이 읽히고, 탐구되고, 추구되며, 창조된다." (《Coming to Writing》)

1990년 엘렌 식수의 글귀라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눌렸던 여성들.

그렇게 살가죽 아래 쌓인 말과 글의 힘은 응축되어 더욱 강력해졌고,

"살이 글이다"

라는 말도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은 항상 흘러갈 길을 찾는 법.

남자들이 문자의 세계를 독식하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는 여성들이 계승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야기는 들려줄 때마다 달라집니다.

기억의 한계 탓도 있지만, 이야기를 듣는 이들과 상황에 맞추고 슬그머니 이야기하는 사람의 소망과 갈망을 끼어넣곤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 합니다.

옛날이야기들은 '옛' 것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보여줍니다.

특히나 인간이 오랫동안 공유한 이야기가 중요해지는 지점인데 그 이유는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와 새롭게 구성하고 조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줄거리 아래에 층을 이루며 켜켜이 쌓이기에,

이런 상징이 그 콘텐츠를 보는 이들, 그 상징을 공유한 이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기에

우리가 옛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옛날이야기를 불러와 시대에 맞게 다시 읽고 쓰는 일이 필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동안 무심코 옛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용에게 잡혀간 공주, 곤경에 처한 아가씨 모티프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것은 옛이야기들을 열어주는 귀한 황금 열쇠가 된다.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전해진 옛이야기에 감추어진 비밀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을 황금 열쇠로 여는 것도 중요하다. 옛이야기에 담긴 삶의 원형은 내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황금 열쇠를 찾아 그 문을 열자. 그 여정은 고되지만 돌아올 때는 빛나는 이마로 돌아올 것이다. - page 112 ~ 113

너무나 친숙한 백설공주 이야기는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유형이 어떠한지, 여성들이 대상화라는 작용에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반작용을 일으키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가부장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삶을 보인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는 의미 없는 존재라 이야기에서 사망 처리되어 사라지고

남자들이 바라는 욕망을 모두 투사해서 태어나, 그 욕망을 고스란히 구현한 백설공주의 삶이란...

일곱 난쟁이가 사과 조각이 목에 걸려 죽은 백설공주를 유리관에 넣어서 전시하는 장면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시절에 유리가 얼마나 귀했는지 떠올려보면, 이들의 전시욕은 정말로 대단하다. 유리관에 전시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트로피와 연결된다. 트로피는 원래 사냥해서 박제해 걸어둔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욕망해서 소유하고 전시하는 행태의 끝판왕이 바로 트로피로 만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백설공주를 유리관에 넣어서 전시하고 그것이 사랑이라며 슬퍼하는 일곱 난쟁이의 애정을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 page 34 ~ 35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키우지 못하고 남자들의 시선을 가치의 기준점을 삼는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같은 삶...

여성을 오로지 살덩어리로 여기는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르면, 언제나 살덩어리는 새로운 살덩어리, 더 어리고 예쁜 살덩어리로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age 37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 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갖고 태어난 '예쁜' 백설공주에게 '예쁘다'는 말이 참 잔혹하게 들렸습니다.

유독 소녀나 공주는 숲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왜 그런 걸까...?

《아름다운 바실리사》를 통해 그 의미를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바실리사의 힘이다. 숲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바실리사가 달라졌을 뿐이다. 해골 속 불꽃을 내면에 품은 존재가 되어 현실을 적극적으로 타파할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빚어내는 창조의 능력(옷을 짓는 능력)까지 발휘한다. 실제로 계모와 의붓 언니를 죽였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상상계의 죽음이므로, 현실에서는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거나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더 이상 삶에 부정적인 힘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치워버리자, 바실리사는 (아마도 타고났으나 그 전에는 몰라서 발휘하지 못했을) 창작 능력을 발휘하며 이를 통해 사회에서 값진 지분을 획득한다. 왕의 아내로 상징되는 단단하고 견고한 지위를 얻을 뿐 아니라, 결혼으로 상징되는 단단한 자기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 page 68

내면의 숲으로 떠났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바실리사 이야기.

현실이 바뀌지 않아도 여성은 내면의 여정을 거쳐 인생 이야기의 주인공 혹은 영웅이 됨을 일러주었습니다.

지금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언어의 싸움, 이름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여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합니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한 이 문장.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내 살을 썼다. 당신에게 가서 당신의 살이 되기를 빈다. - pag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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