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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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월에 같이 읽어보게 된 이 책.

솔직히 이번 기회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 책.

사실 책 표지로는 그저 말 그대로 선생님 이야기? 인가 했는데...

이렇게 물씬 맞을 줄이야...

읽고 나서 한참을 헤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늘어가는 직업여성들.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일과 삶이 힘겨운 이들.

공감하기에 가슴 후벼졌던 이야기들.

이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는 미래시제가 필요하다. 온전한 미래가"

코리안 티처



소설은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어 선생님의 이야기였습니다.

학기마다 하나 명의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이끌어갔던 이야기.

우선 봄 학기는 '선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7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선이는 한국어 강사 국가고시로 방향을 틀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합니다.

그리곤 H대 어학당 채용공고에 지원을 하였고 베트남 특별반에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반 학생인 꽌의 인스타그램에서 #KoreanHotGirl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게 되는데...

여름 학기는 '미주'의 이야기였습니다.

H대 어학당 8년 차의 베테랑 강사인 그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수업을 할 만큼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지만 결코 학생들을 봐주는 법이 없기에 강의평가에서 늘 하위권을 맡게 됩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 2급을 맡게 된 미주는 세 번이나 유급을 한 벨라루스 국적의 학생 니카를 만나게 됩니다.

그를 꼭 3급으로 보내야겠다는 열의와 다르게 작은 오해로 인해 결국 고소를 당하고 마는데...

가을 학기는 '가은'의 이야기였습니다.

H대 어학당에서 단 두 명뿐인 지방대 출신이지만, 강의평가에서는 늘 1등을 하고, 학생에게 공개 고백을 받기도 하는 등 인기가 많은 2년 차 신입 강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하나의 문자가 전달됩니다.

바로

I saw your video

도대체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겨울 학기는 '한희'의 이야기였습니다.

2년 전 책임 강사로 H대 어학당에 들어왔고, 겨울 학기가 끝나면 재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 연장을 하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는데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궂은일을 하면서도 일을 하는 그녀.

그리고는 그 후 모두의 이야기...

"다른 강사분들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도 서비스입니다. 학생들이 돈을 내고, 여러분은 그 돈으로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학생이 갑이고 여러분이 을입니다. 학생이 없으면 여러분은 여기서 일할 수도 없어요."

...

당신은 틀렸어. 우리는 정이야. 학생이 갑이고, 당신이 을이고, 바로 옆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책임 강사들이 병이고, 나와 같은 평강사들은 정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강평으로 우리를 자르겠다고 위협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고, 여기 있는 강사들은 위협당하면 위협당하는 대로 당신 비위에 맞춰 멍청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 page 120 ~ 121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 네 명의 이야기,

하지만 비정규직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

아니, 여성들의 일하는 이야기

더 정확히 하자면 우리 현실 이야기였습니다.

원장의 연설을 들으며

'까라면 까야지'라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오래 다니겠다고 결심하는 '선이'의 간절함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니?'라는 동료들의 시선에도 매번 학국어학당의 관습에 맞서는 '미주'의 정의로움도,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리지만 그래서 타인의 불행 또한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해버리는 '가은'의 순진함도,

한국어의 미래시제를 의심하며 갑질을 당하는 것에도 갑질을 하는 것에도 익숙한 '한희'의 치열함

다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속상하고 분노가 치밀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사회에 살아가고 있고 치사하지만 살아가야 함, 버티고 있음에 우리라도 지속적인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의 '가르침'.

결국 우리 사회를 '가리켜' 목소리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치 선이가 학생들에게 했던 것처럼...

선이는 숨을 고르고 바로 수업에 돌입했다. 학생들에게 형용사를 가르쳐야 했다. '좋다'와 '나쁘다'를 가르치고, '많다'와 '적다'를 가르치고, '행복하다'와 '슬프다'를 가르치고, '많다'와 '적다'를 가르치고, '행복하다'와 '슬프다'를 가르쳐야 했다. 언젠가는 '정당하다'와 '부당하다'를, '감격스럽다'와 '모욕적이다'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선이는 학생들이 그런 단어를 배울 때 '부당하다'보다 '정당하다'가, '모욕적이다'보다 '감격스럽다'가 더 한국 생활에 유용한 단어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 page 47

그리고 전한 메시지.

이제 한희에게는 미래시제가 필요했다. 온전한 미래가 필요했다. 의지에도, 추측에도 기대지 않는 하나의 완전한 사실로 존재하는 미래가 필요해졌다. - page 223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문법을 통해 우리에게 일침을 가했던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어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가은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가은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된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나 많은 이유 표현이 생겨난 거 아닐까.

결과 표현은 '-(으)ㄴ 결과', '-(의)ㄴ 끝에', '-(으)ㄴ 나머지' 정도로 적은 걸 보면 정작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건가. 이미 벌어진 일에는 순응하면서도, 그 일의 이유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

가은이 이유 문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배우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은이 이유를 그다지 묻지 않으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은은 자신이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가은에게 사람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와 같았다. 어느 날 주어진 것.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 - page 173

'살아 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

...

그냥 살아가는 것도 벅찬데 살아 남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 힘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읽고 현시대를 되짚어봐야 할 책.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갈 이 사회를 향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책.

나의 목소리가 모두의 울림으로 되는 그날이 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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