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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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 시.

바로 일제 강점 시 이별과 그리움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노래한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솔직히 그에 대한 관심이 많지는 않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한데...

최근에 박연준의 『듣는 사람』 책에서 저자의 말에

『진달래꽃』은 1925년, 스물넷의 소월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이다 총 127편의 시가 담겨 있다. 오래 걸려도 좋고 오래 걸리지 않아도 좋다. 끝까지 한번 읽어봐야 한다. 우리가 아는 시, 우리가 부르던 노래, 우리가 살면서 품은 소소한 설움들을 새로 만날 수 있다. 20대 때는 소월의 시가 낡고 촌스럽다고 오해했고, 30대 때는 '먼 옛날 정서'라 오해했다. 무지해서 그랬다. 정색하고 『진달래꽃』을 다시 읽으니 놀라운 데가 있다. 한시와 창가와 신체시만 있던 시절 소월의 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모던한 시였을 것이다. 소월이 노래한 한, 슬픔, 어둠은 한국에서 자란 이들의 영에 정서적 DNA로 유전되고 있다. 우리에게 소월이 있다는 것, 이런 시인이 있다는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이다. - 『듣는 사람』, 박연준, 난다, page 98 ~ 99, 2024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시인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함을...

그동안의 무지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204편의 가장 많은 시를 찾아 수록!!

이건 운명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깊고 무거운 어둠의 시대를 가볍고 찬란한 빛으로 바꿔준 김소월의 시어들.

이제야 오롯이 마주해봅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김소월 시집의 모든 것

노래와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된 시인

최초 '실버들'이 유작임을 밝히고 생애의 연보와

사망 후 김소월의 문화예술 세계를 정리한 최신판!

김소월 시집,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 시집은 초판본 『진달래꽃』 시집에 실린 127편의 시 외에 77편을 더 찾아 현재 출간된 김소월 시집으로는 가장 많은 총 204편을 싣고 있었습니다.

민족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서정시인으로 더욱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시인.

특히 그의 사랑에 대한 시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시어들은 너무나 감미로워 한글의 우수성까지 한껏 뽐내고 있으며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언어로 AI도 복제할 수 없다고 하니...

정말 그가 우리의 시인임이 더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남편이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이상자가 되자 아들에게 기대며 지나치게 애착심을 가졌고, 숙모 계희영은 신학문에 눈을 뜨고 여러 문학작품을 섭렵한 인물로 조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탓에 '여성'을 화자로 두고 한과 슬픔, 벗어나지 못하는 상처를 절제하여 담고 있는 작품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먹먹합니다.

서러움...

한...

그의 기억의 근원에서부터 비롯된 허무주의, 미래라곤 없는 듯이 느껴지는 암울한 현실, 연이은 사업의 실패와 경제적 빈곤, 문우 나도향의 요절과 이장희의 자살 등 그가 현실을 포기하고 비관적 운명론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쁜 일까지도 생의 노력"이라고 노래한 그.

그래서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만 그...

그가 참 그립기만 합니다.

맘에 속의 사람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인제도 인제라도 보기만 해도

다시 없이 살뜰할 그 내 사람은

한두 번만 아니게 본 듯하여서

나자부터 그리운 그 사람이요.

남은 다 어림없다 이를지라도

속에 깊이 있는 것 어찌하는가,

하나 진작 낯모를 그 내 사람은

다시 없이 알뜰한 그 내 사람은

나를 못 잊어하여 못 잊어하여

애타는 그 사랑이 눈물이 되어,

한끝 만나리 하는 내 몸을 가져

몹쓸음을 둔 사람, 그 나의 사람......

시의 매력을 알게 해 준 김소월.

왜 그의 시를 읽어야 하는지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시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던, 덕분에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어 치유받았습니다.

필사하기에도 너무나 좋은 김소월 시집.

하루에 한 시.

시를 쓰다 잠시 호흡을 고르다 다시 쓰다...

그렇게 그와 오롯이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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