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누수 일지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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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로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여름 사람' 김신회 작가.

'누수 일지'

책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우여곡절이 있을지...

무엇보다 이 책은 사실을 기반으로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팩션(Fac-tion) 에세이'라는 점에서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을 거란 기대감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내 집에서 불안감 없이 편안히 지내는 것

1인 여성 가구의 피, 땀, 눈물 어린 여름의 기록

에세이스트 김신회의 축축하고 수상한 본격 누수 체험기

나의 누수 일지



또독... 또독... 또독...

성실하게 글을 써 마감하고, 원고를 엮어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것으로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전업 작가.

그러던 어느 날.

음...?

천장이 젖어 있네?

의자를 딛고 올라가 보니 몰딩 이음매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누수인가?!

그동안 세상 물정이라고는 모르고, 싫은 소리도 할 줄 모르는, 책임감과 용기마저 부족한 회피형 성격의 '나'는 생애 처음으로 피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윗집과의 분쟁을 해결하는 동안, 자신이 꼭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도 결코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이제껏 믿어온 것과는 달리 감정적이고 미성숙하며, 타인에 대한 신뢰와 관대함도 부족하고, 내 것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마침내 이웃과 마주할 용기를 냅니다.

'나'는 '누수'로부터, '윗집 이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건 뭘까. 약간의 얼룩과 자국을 남긴 도배를 보수하기 위해 거실 전체를 새로 도배하는 것? 생각만해도 지친다. 이웃과 법적 싸움을 벌이는 것? 상상만 해도 기빨린다. 이미 한 달간의 다툼으로 진이 쏙 빠졌는데, 이 생활을 수개월 더 이어가야 한다니 끔찍하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다. 내 집에서 불안감 없이 편안히 지내는 것.

그를 위해선 뭘 해야 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들리던 선배의 조언이 조금씩 마음에 스민다.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보내줬으면 좋겠다.' - page 165

책을 읽으면서 이 말에 참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직관을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 '해야 할 것 같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마음의 소리'는 직관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라면, 직관적인 선택의 기준은 '나'.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일은 고집이나 뒤처짐이 아니다. 살면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온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난데없는 소동으로 차근차근 망가지는 일상을 목도하면서, 우선순위를 잊고 허둥대는 나를 보았다. 옳은 길은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이 내 길은 아닐 수 있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없어 보이고 겁쟁이 같고,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나에게 맞는 걸 고르는 게 맞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바로 보는 것이다. - page 178

'누수 일지'였지만 결코 누수 일지만은 아니었던 이야기.

그동안 모든 경험은 삶의 거름이 된다고 믿어왔는데

누수만큼은 예외다.

집에 물이 새면 삶이 줄줄 샌다.

아, 인생이 누수네!

내 인생 자체가 누수됐어!

_'작가의 실제 일기' 중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누수'를 겪고 있을까?

잘 헤쳐나가고는 있는 걸까?

왠지 이 말이 정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기분이 내내 좆같은데 한 번은 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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