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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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그렇게 저자는 1999년 가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향한 네 자매의 여행기였습니다.

저 역시도 '자매'이기에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

이들의 신바람 여행기에 저도 동행하고자 합니다.

"우와따따뿌뻬이!"

마드리드 에스파냐 광장에서 바르셀로나 까사밀라까지!

평균 나이 칠십, 네 자매가 함께한 신바람 여행

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일상의 잡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을 꿈꾸게 됩니다.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산'이든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든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꿈속 여행지'가 존재하게 되는데 저자에게는 '스페인'이 그런 곳이었다고 합니다.

교직에 몸담아 평생 제철에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그녀.

정년 퇴임 후 이어령 선생과의 부부 동반 여행을 계획했는데 남편이 석좌교수가 되어 여행에 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그러자 작은언니가 자기와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동생, 큰언니도 같이 결성되어 네 자매의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사람의 여건이 순탄하게 맞아서 함께 외국을 여행하는 것은 바랄 수도 없는 꿈이었다. 모두가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처럼 같이 여행을 하면서 "우와따따뿌뻬이!"가 자주 나올 수밖에 없었다. - page 22

갑작스레 결성된 여행이기에 더없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여행.

그래서 신나는 것만 보면 세 살이었던 막내 손녀가 아주 신이 나면 하는 감탄사 "우와따따뿌뻬이!"를 외칠 수밖에 없었고 눈앞에서 새로 산 가방을 날치기를 당해도, 큰언니의 구두 끄는 소리에 며칠 잠을 설쳐도, 서둘러 길을 걷다 겹겹이 넘어져도 그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었습니다.

그 웃음이 우리를 소녀 시절로 데려갔다. 우리는 맨날 그렇게 웃으면서 자라났다. 언제나 야단을 맞을 때까지 자지 않고 킬킬댔다. 6·25 동란 때, 등화관제의 어둠 속에서도 그렇게 웃고 까불어서 밤마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다. 계집애가 여섯이나 되니 웃음소리도 컸다. 일을 잘못 처리해서 할 말이 없자 다급한 김에 옛날에 하던 욕을 내뱉기는 했지만, 내 허리가 염려스러워서 잔뜩 켕겨 있던 작은언니도 그 웃음 덕에 기력을 회복했다.

"봐! 이렇게 웃으며 다니문 엔도르핀이 막 생겨 병 같은 거 안 난단 말이야!" - page 25

사실 여행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일이기에 룸메이트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기 쉽습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떠난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싸우고 절교하는 것도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 갔다가 다투는 것도 다 서로가 피곤해서 참을 힘을 잃은 것이 원인이지만 이들은 지나온 수많은 시간들을 추억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배려로 재미있고 아름답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으응...... 형제끼리는 싸우거나 흉보면서도 다시 저렇게 화해가 되는구나! 남은 그게 안 되던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니임......" - page 43

동생은 자기가 지브롤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어온 그 애는, 자기가 살아서 유럽의 땅 끝에 있는 바위산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그저 흐뭇해서, 혼자 두어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옆에 남았고, 다시 올 가망이 없는 유럽의 땅끝과 그 해협을 오래 바라보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page 162 ~ 163

책은 2002년 출간된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과 저자의 에세이 「로스앤젤레스에 두고 온 고향」을 한데 모아 엮여있었습니다.

1977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동생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에 그동안 감히 혼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녀의 첫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떠나고 나면 나는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권역에서 벗어난다. 싫건 좋건 내 문제는 나 혼자 처리해야 하는 준엄한 현실 앞에서야 하는 것이다. 예년에 없는 강추위 속에 보름달이 둥실 떠 있는 램프에 나서니 모든 것이 어느새 낯설게 느껴졌고, 기이한 실루엣을 그리며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먼 곳으로 귀양살이라도 떠나는 무리처럼 처량하게 느껴졌다. - page 272

동생의 수술까지 지켜보고 가려고 했지만 모두가 처음 해외에 나온 여행인데 잔소리 말고 파리 구경까지 하고 집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심란한 마음...

한 번도 혼자 식사를 한 일이 없게 늘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과 가족들...... 로비에 가서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거니 그녀는 파리에 혼자 가는 나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 병든 동생에게 오히려 의지하면서 살아온 이상한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좌충우돌하면서 겨우 음식을 주워다 놓고 혼자 않으니, 파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곧장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따뜻한 온돌, 낯익은 일상, 보호받는 생계와 친숙한 얼굴들...... 아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 page 330 ~ 331

비철의 파리의 모습은 생동하는 청동의 조각들과 철책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겨울의 말라붙은 분수까지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연극을 본 뒤 전한 이야기...

다시 자정이 가까운 밤거리에 나서니 이제는 이곳을 떠나도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은 안정감이 되돌아왔다. 어차피 다 보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결국 자기 앞에 놓인 것밖에 못 보고 죽는다. 그것도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있는 사상도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있는 것만 골라 보다가 우리는 모

두 유한한 생명을 끝마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끔 다른 여행기를 쓰는 것, 그리고 그런 여행기가 쓰일 이유가 거기에 있다. - page 381

참 울컥했습니다.

저자는 '1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펴냈다고 하였습니다.

읽으면서 감동받았었고 그 따스함에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웃었고, 배웠고, 사랑을 배울 수 있었던 여행.

저도 이런 여행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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