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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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있는 저분.

아마도 이 소설의 주인공일 것입니다.

저 등으로부터 뭔가 많은 이야기가 있을 듯한데...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요?

"모리스 씨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_봉태규(배우)

이 말이 인상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모리스 씨가 전하는 이야기에 저도 귀를 기울여봅니다.

상실과 외로움을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특별한 이야기

모든 인생에는 끝끝내 꺼내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슬픔과 후회, 사랑과 기쁨마저도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2014년 6월 7일 토요일

오후 6시 25분

아일랜드 미스 카운티 레인스퍼드

레인스퍼드 하우스 호텔 바

84세 모리스 해니건은 바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다섯 번의 건배, 다섯 명의 사람, 다섯 개의 기억.

그는 숨죽여 혼잣말을 합니다.

"난 여기 기억하러 왔어. 지금까지 겪었고 다신 겪지 않을 모든 일을." - page 38

아일랜드 흑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다섯 명을 기억에서 불러내 그들에게 건배합니다.

애써 덤덤하게 털어놓은 그의 열등감, 수치심, 분노, 복수심과 다정한 마음과 연민의 감정, 뜨거운 사랑...

평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던 그였기에, 독백으로 읊조리기에 더 가슴 시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난독증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어린 모리스 씨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형 토니.

그런 형 토니가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홀로 어른으로 성장한 모리스 씨.

형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건배사를 시작으로 어릴 적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자 평생 자신을 옥죄는 비밀이 될 사건에 대해 암시합니다.

하지만 나는 토니와 함께했던 세월에 감사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것 아니겠냐? 나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나를 끌어주고 정신 차리게 해주고 무엇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토니가 아주 조용하구나, 아들아. 지금까지 내 귓가에 한마디도 속삭이지 않았어. 내 계획에 너무 당황해서 침묵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 page 98

어린 시절, 모리스 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역의 지주 휴 돌러드와 그의 아들 토머스에게 학대와 괴롭힘을 당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와 다투던 토머스는 실수로 가문의 보물인 에드워드 8세 금화를 창밖으로 떨어뜨리게 되고 이를 우연히 지나가던 모리스 씨가 몰래 주워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숨겼습니다.

금화를 분실한 토머스는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게 되고 이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서서히 풀어가게 됩니다.

구함

에드워드 8세 기념주화 1파운드짜리 금화, 1936년.

최고가 지불 의향 있음. 상태 무관.

희망 금액을 적어서 런던 피넬 웨이 3번지

토머스 돌러드에게 보내시오.

<국제 주화 수집가 잡지> 51호(1977년 5 - 6월) 개인 광고란에서

두 번째는 임신 팔 개월에 사산된 딸 몰리에게 건넨 건배였습니다.

격정적 슬픔으로 가득 찬 그의 이야기...

나는 네 엄마의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야 했다. 아들아, 넌 절대, 절대 그럴 일이 없길 바란다. 마치 누가 내장을 양손으로 쥐고 최대한 세게 내 생명과 의지를 전부 짜내는 느낌이었어. 나는 세이디의 손을 부드럽게 치우고 우리가 만든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육체적 고통을 느꼈어. 그애는 정말 대단했어. 그 작은 아이, 우리의 대단한 몰리. 아이의 부드러운 뺨에 입술을 대자 몰리를 몰랐다는 슬픔, 알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슬픔에 몸이 떨렸다.

"정말 미안하다." 나는 아이의 귀에, 빳빳한 면 담요의 냄새에 대고 속삭였지. - page 111

세 번째는 아내 세이디와의 첫 만남, 아내가 사랑했던 노린에게였는데 여기서 금화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고 그 뒤...

난 세이디가 노린을 위해 평생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지만 세이디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구나. 세이디는 워낙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 세이디의 상처와 죄책감을 온전히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최대한 신경썼어. 하지만 일생의 절반은 바깥일-사업, 나의 제국-에 정신이 팔려서 집안에 뭐가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종종 잊고 말았다. - page 202 ~ 203

그리고 이어진 아들 케빈을 위한 네 번째 건배가 마지막으로는 가장 사랑한 아내 세이디를 위한 건배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걸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 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 page 264

끝내 꺼내지 못한 마음...

그러니까 아들아,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 좋으나 싫으나 이게 나야. 잘살아라, 아들아. 계속 열심히 삶을 일구렴. 넌 정말 잘할 거야. 그리고 고맙다, 케빈. 이 오랜 세우러 동안 나를 나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이것만 알아다오-네가 나를 필요로 하면 항상 네 곁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을 거라는 걸. 사랑한다, 케빈. 로절린의 손을 잡으렴. 이제 안녕. - page 326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사랑과 인생을 건 비밀이 그의 삶을 마지막까지 어떻게 직조하는지...

벅차오르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도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아버지'라는 이름 하에 묵묵히 살아갔던 그.

그 역시도 나와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가 아들에게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란다, 아들아. 사소한 것. - page 18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건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소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오늘은 흑맥주 한 잔에 잠시 떠올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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