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확대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 보험료는 지불 능력에 따라 부담해야 할까?
정부는 소비자들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대형 업체들로부터 지역 상권을 보호하는 노력을 해야 할까?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무엇일까?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와 행동에 남한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최근에 있었던 가슴 아픈 세월호의 비극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등등.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문들은 극심한 이견과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견들은 흔히 정의와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에 관해 서로 이견을 보이는 원칙 및 개념에 각각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견 충돌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심오한 도덕적 신념을 공적인 담론의 장으로 가져오길 주저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실수'라고 하였습니다.
정의에 관해 경쟁하는 원칙들을 두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다투는 것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성숙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다. - page
그리하여 그는 이 책에서 구제 금융, 대리 출산, 동성 결혼, 과거사 공개 사과 등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문제를 통해
'무엇이 정의로운가'
에 대해 정치 철학사 속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상가들의 이야기로부터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고는 우리 각자에게 정의에 대한 견해를 잡도록 해 주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page 380
도덕과 정의에 대해 저자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였습니다.
'복지'를 중시하는 공리주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지상주의
'미덕'을 중시하는 공동체주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 따르면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릴 땐 좋겠지만 개인의 권리는 존중되지 않는, 고문이나 대리 출산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는 도덕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오늘날 보편적 인권이라 부르는 개념의 토대가 된 이마누엘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개념은 설득력이 강하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사례처럼 정언 명령에 부합하는 행동은 딜레마에 빠질 수 없음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특정한 이해관계가 사라진 무지의 장막 뒤에서 정의의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주장도 완벽해 보이지만 이 역시도 아무리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유하려 해도 결국 공동체의 이익이나 관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의'란 무엇이란 말일까...
명백한 답이 없기에 지금도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 시선, 논의를 통해 한 발씩 나아가야 함을 일러주었습니다.
대체로 '○○는 무엇인가'란 책들을 읽어보면 확고한 답이 없었습니다.
대신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사색할 수 있게 좋은 재료들을 선사해 주며 스스로의 사고를 다듬어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책은 읽었으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어찌압니까
어떻게 할까요
감히 제가 감히 정의를 정의합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