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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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구성, 위트 있으면서도 경쾌한 글, 개성적인 등장인물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일본 대표 작가 '이사카 고타로'.

'아사카 월드'

저도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껴 꽤나 찾아 읽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사카 고타로의 특기가 모두 담긴

'이사카 월드'의 팬에게는 반가움 가득한 '베스트앨범'이,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독자에게는 이 한 권으로 '이사카 월드'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

된다고 하니 팬으로서 더더욱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데...

과연 이번엔 어떤 인물들이, 얼마나 정교하고도 기상천외한 사건들로 우리를 안내할지 읽어보았습니다.

미래를 보는 중학교 교사와

소설 속 기묘한 2인조 사냥꾼

두 이야기가 교차할 때 세계가 변한다!

페퍼스 고스트



페퍼스 고스트(Pepper's Ghost)

연극 무대나 영상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로, 조명과 유리를 사용해 다른 곳에 있는 물체를 관객 앞에 보여주는 수법.

다른 곳에 숨겨진 물체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중학교 국어 교사 '단 지사토'.

그에게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아버지로부터 단에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체질 같은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비말을 옮긴 사람이 내일 겪을 일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마치 '선공개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하면서 섬광 같은 것이 번쩍번쩍 터졌습니다.

등받이가 보인다. 신칸센 좌석이다.

그 재채기 때문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건 사토미 다이치가 보는 장면이다. 즉, 그가 신칸센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3인용 좌석이고 옆에 사람이 있다. 가족과 여행을 가는 걸까 생각했을 때, 그 장면이 크게 흔들렸다. 차체가 비스듬해질 만큼 크게 기울었다. 어디선가 페트병이 날아왔고 천장에 가까운 수하물 선반에서 가방이 굴러떨어졌다.

차멀미 비슷한 감각에 휩싸이더니 스크린이 깜깜해졌다.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장면이 사라졌다. 그 대신 거실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 page 35

자신이 담임하는 반 학생인 사토미 다이치가 탄 기차가 탈선 사고에 휘말리는 장면이 보인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충고를 들었는데...

좋지 않은 '선공개 영상'을 보았을 때 '신경 쓰면 안 된다' '잊어버려라' 하고 자기 자신을 타일러도 마음속에 앙금은 남고, 그런 일이 계속되면 우울해진다. - page 66

어떤 사람의 미래를 알게 되었더라도 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게 낫다고 했지만 다이치가 걱정된 단은 은근슬쩍 자신이 아는 점쟁이가 전해줬다며 그에게 알리게 됩니다.

덕분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다이치.

다이치의 아버지는 감사 인사로 그를 찾아오지만 오히려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단에게 엄청난 일들이 닥치게 되는데...

한편 단의 학생 '후토 마리코'.

마리코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린 '고양이 도살자'와 그를 부추긴 시청자 '고지모(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를 찾아 복수하는 2인조, '러시안블루'와 '아메쇼'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러시안블루와 아메쇼 콤비는 다음 타깃으로 정한 고지모의 집으로 향했으나 이미 그는 납치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네, 안녕하세요. 고지모 사냥꾼입니다. 고양이에게 의뢰를 받고 왔습니다. 하라쇼, 아메쇼, 마쓰오 바쇼." 남자는 구슬이 달린 끈 같은 물건을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아메리칸 크래케라고 불리는 장난감과 비슷하게 생겼다. 씽씽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또 재미없는 말장난을 하는군, 하고 다른 남자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후토 마리코의 소설에 나오는 두 사람 아닌가?

마침내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다. - page 267

소설은 소설 속 등장인물인 고지모 사냥꾼, 그리고 교사 단을 축으로 진행되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과연 결말은 어떻게 그려질지 또다시 펼쳐질 '이사카 월드'로 빠져들어보는 건 어떨지.

개인적으로는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읽고 나서 조금은 찝찝함이 남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이사카 고타로만이 그려낼 수 있기에 대단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인상적인 문구를 뽑자면...

전부 정의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란 건 알아요. 약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아주 편향된 평가일지도 모르지만) 악인이 아니라 선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정의감을 연료로 폭주하는 기관차같이 변할 때가 있는 거겠죠. - page 233 ~ 234

피해자들이 나서야만 하는 현실이...

지금의 우리 현실과도 닮아 있었기에 씁쓸함이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울림으로 다가왔던 말

러시안블루가 눈살을 살짝 찌푸린 후 "바뀌었나?" 하고 심술궂은 질문을 던졌지만 나루미 효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겨우 자신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회와 불안이 깃든 표정 같아 보였다. - page 427

소설 속에선 자주 니체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언급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영원회귀' 사상에 감탄해 이 사상을 반영해 보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삶이 다시 반복된다면...

그 전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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