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말들 -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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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언어'를 이해하는 것인데...

자유, 평등, 박애의 의미를 지닌 국기의 나라 '프랑스'.

이 나라의 말에 깃든 삶과 정신, 문화와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우리의 일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롭고 풍요로운 시선을 제공해 준다기에 호기심에, 새로움에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저도 벌써부터 설렜습니다.

"마음속 사각거림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나아간다"

프랑스 사회의 '냉정과 열정'

20년 차 파리지앵 작가가 34조각의 퍼즐로 읽다

파리에서 만난 말들



중세와 르네상스, 절대군주제, 제국주의, 양차 세계대전, 68혁명을 거쳐 금융자본주의라는 노골적 착취와 갈등의 시대에 이른 프랑스 사회의 언어 속엔 그 역동적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전쟁터의 혈흔이자,

현실을 덜 고통스럽게 건너게 해주는 지혜의 결실이며,

지배계급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이기도 했던 프랑스어.

이러한 단어들을 살펴보니 프랑스적 가치의 중심에는 '홀로 그리고 '함께'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주의를 고수하면서도 필요할 때면 함께 뭉치는 프랑스적 삶의 태도.

그 모습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 모두 존중하는 그들만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말속에 담긴 보배들을 소중히 보듬고 살펴야 하는 이유를 일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말'의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다.

열매의 껍질을 벗겨내면 싱싱한 과육이 풍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엔 더 단단한 씨앗이 웅크리고 있다. 과일이 품은 색깔과 향기, 풍미는 이야기고, 씨앗은 공동체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해온 지혜와 철학, 경험이 응집된 정보의 결정체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 발아하기를 기다리는. - page 4

책은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에서는 '견디는' 생존(survivre, 쉬르비브르)을 넘어 '누리는' 삶(vivre, 살다)을 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을 14개의 언어를 통해,

2부 <생존을 조각하는 말>에서는 '공화국'을 완성한 프랑스적 가치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정치적 차이를 11개의 언어를 통해,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에서는 모두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뭉치는 프랑스의 끈끈한 공동체성을 9개의 언어를 통해

살펴보며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함께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언어로 그 나라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시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어보다는 왠지 모르게 부드러운 음성을 가졌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던 저.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찬미하는 'Il fait beau(일 페 보: 아름다운 날씨로군요)를 통해 일상에서 경탄을 느낀 대상을 향해 아낌없이 표현하는 그들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읽으면서 치열했던 현장이, 하지만 꿋꿋이 나아가는 그들의 열정이 엿보여 새삼 강인하다 느껴졌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파업의 횃불을 들고 싸움을 시작하면, 도시 곳곳에선 총파업을 촉구하는 스티커나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는다. 희망을 촉구하는 봉화처럼. 그때 등장하는 포스터는 총파업grève générale 대신, 첫 번째 단어에서 g를 뺀 rève générale이다. Rève는 꿈을 뜻한다. '총파업'을 '모두의 꿈'으로 바꿔놓는 프랑스식 농담은 집단 기억이 공유하는 끈끈한 사회적 유산이다. - page 204 ~ 205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조금은 씁쓸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저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선 허구한 날 복수극이 나오는가?"

같은.

한국 사회에선 전방위적 갑질과 그로 인한 속 터짐이 전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데, 법이나 사회적 정의는 드물게 작동하고 개인적 응징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드라마가 대신 그걸 해주는 역할을 맡은 걸로 보인다고 설명하면 이들이 건넨 이 말.

"Ils vivent par procuration[그들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 인생을 사는군요]"

'대리 인생'을 산다는 그들의 말이 지금의 우리를 되짚어보게 해 주었습니다.

읽고 난 뒤 외국인의 시선에서 우리의 어떤 말들이, 어떤 느낌을 얻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한글날도 맞이하면서 새삼 뉘우쳐 봅니다.

우리의 정신을 담고 있는 우리말.

우리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새겨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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