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프라자에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홈 공방 '나리공방'을 운영하던 '나리'.
구 년 만에 마련한 열 평짜리 공간의 문을 매일 여는 것이 그녀의 낙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고 나리공방의 손님 중 한 명이자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친해진 '수미'가 확진이 됩니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유되던 시기였기에 수미의 이동 경로가 공개되며 나리공방은 주목을 받고 결국 새경프라자의 다른 가게들에도 손님이 뜸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취재하러 온 기자 앞에 선 나리는 그만 '과호흡'으로 병원에 실려 가게 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나리가 이전에 결핵을 앓았고 지금도 잠복 결핵이 있다는 것을.
내가 행주를 짜자 오종수도 휴대폰 화면을 껐다. 뒤로 와서 내 어깨를 주물주물하더니 오종수가 진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근데 자기는 누구한테서 옮은 거야?" - page 37
만조 아줌마...
어린 시절 비탈진 사과밭을 운영하던 부모와 그 사과밭의 일꾼으로 오던 만조 아줌마가 결핵약을 복용했던 기억이 났고 만조 아줌마네 팀 일꾼들이 바로 결핵 환자들이 모여 살던 '딴산마을'의 사람들이었다는 것까지...
한편 수미가 확진되기 이틀 전, 나리는 딸 은채의 부름에 달려가 학원의 줌 수업 화면을 보게 됩니다.
화면 속엔 무언가를 내리치고 부수는 소리가 났었는데 다름 아닌 수미가 거실을 깨부수는 소리를 수미 딸 서하가 송출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다급히 서하를 데리고 공방으로 갔고 수미가 새경프라자 앞에서 울면서 서하를 부르지만 나리는 공방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이틀 뒤 수미는 확진 판정을 받게 되고 그렇게 어떤 사과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서하와 헤어지게 된 수미.
서하는 온전히 수미 것이었기에 그 사이의 단절을 낸 나리에게 적대심을 갖게 된 수미, 나리 역시도 아이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수미에게 증오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이들은 가까스로 참던 격한 감정을 마주한 순간,
"운전을 좀 해줘야겠어."
나는 수미한테 말한다.
"갈 데가 있는데 내가 지금 운전을 못하거든."
내겐 초대장이 있었다.
2020년 이후로 온 마을의 축제가 금지되었는데 호수 너머에서 나를 초대한 사람이 있었다. - page 185
딴산에 가자고.
함께 만조 아줌마가 일구고 있는 사과밭에 가자고.
그리하여 떠나게 된 나리와 수미.
이곳으로부터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며 조금씩 벌어졌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내 공방에 와서 울던 날에 대해서나 수미가 입원해 있던 한 계절 동안 자신이 보낸 시간에 대해서, 수미가 퇴원한 뒤의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서하와 수미가 그들의 집이 아닌 곳에서, 그들 둘만의 고립 속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섞인 채 서로를 의식했다는 것이, 대면의 시간이 다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을 짧게나마 경유했다는 것이, 그것이 고마웠다.
만조 아줌마가 예전의 나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을 내주었던 것처럼. - page 262
덤덤히 그려나간 문체가 오히려 더 뭉클하게 다가왔던 이 소설.
무엇보다 지난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팬데믹으로부터 아니 그 전부터겠지만 단절과 소외 속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문장으로 '마주'하니 안타깝고도 연민이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며 비로소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주한다는 것...
그 의미를 오롯이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수미의 그 토로들이 수미가 겪고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지난봄처럼 그 시간을 부서뜨리기만 하진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나는 수미와 서하가 겨우내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수미가 실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내 공방 문을 열어놓을 수 있었다. 서하를 보고 있는 어른이 너뿐이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가족이어서 해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라고, 가족이 아니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믿어보라고, 가족 아닌 그이들이 저기 있다고, 수미가 체감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말해줄 수 있었다.
보라고. 서하는 해변에 가려 한다고. 마음을 접어버리지 않았다고. 너한테 계속 자기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고. 너한테 순응하지 않았다고.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 page 303 ~ 304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한 저자의 메시지가 모두의 가슴속에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