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는 역사 탐방기였습니다.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외쳤던 '상해 시기'
1932년부터 1940년까지 항주 등 여섯 군데를 옮겨다니며 물 위에 뜬 정부 상태였던 '이동 시기'
그리고 1940년부터 1945년 마지막까지 행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중경 시기'
까지 그야말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나라 밖에서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요인들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단편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우리의 독립 운동가를 토대로, 아니면 어떤 사건에 의해 임시정부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나마 <선을 넘는 녀석들>과 같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서 기억의 조각들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전반의 흐름을 알게 되니 가슴 속에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과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뭉클함이 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처음 임시정부 요인들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낯선 상해에 착륙했을 때 그들의 심정.
적과 싸우는 것보다 앞이 까마득한 기나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그들.
그럼에도 일제치하를 벗어난 진정한 독립을 위해, 또 반드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꿈을 위해 언제가 될지 모르는 고단한 여정을 선택한 그들의 의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무례하였습니다.
마지막 발자취는 조국의 광복에 독립운동의 뜨거운 노력과 피가 있었음과 함께 연합군의 힘이 있었음에 이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부산에 배가 도착한 지) 마침내 사흘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부산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고국땅이라고 돌아와 처음으로 들어간 곳이 수용소였다. 난민 수용소, 우리는 난민의 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방역과 통관 절차 때문이라고 하나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짐을 한곳에 모아놓고 모두가 일렬로 늘어서서 주사를 맞았다. 미군 병사들이 옆에 서 있다가 옷 속에다 디디티DDT를 뿌려댔다. (중략) 부산 부두에서부터 부산역을 떠나올 때까지도 수천 명의 동포가 귀국한 것을 환영한다는, 그 흔한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
또 하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기차가 설 적마다 화물칸으로 기어 올라와 설쳐대는 경찰관들이었다. 아무에게나 반말 짓거리로 대하고 위세를 부리는 꼴이 꼭 왜정 때의 경찰을 그대로 뽑아다 박아놓은 것 같았다. - 《장강일기》
그리고...
그러나 그 광복의 열매를 가져간 존재는 냉전이란 이름으로 한반도의 양쪽에 자리를 잡은 미국과 소련의 군정장관이었다. 또 그들의 입맛에 맞는다면 일본의 앞잡이였더라도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다. - page 380 ~ 381
그래서 '진정한' 광복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책 속에는 <답사 더하기>로 임시정부의 움직임을 따라 가면서 덧붙여 가보면 좋을 곳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곳이 있었는데 위안부와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한 곳은 '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이었는데 중국 역시도 일본군의 위안부, 곧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엔 박물관 건물이 있는 마당에 슬프지만 의미 있는 조각이 있었는데 바로
<한중 평화의 소녀상>
두 소녀상의 그림자가 주는 메시지도 특별하다. 우리나라 소녀의 그림자는 깨져 있다. 꼭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꿈이 깨져버린 비참한 상태를 표시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중국 소녀가 걸어와 곁에 앉은 것처럼 발자국이 표시되어 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래도 나누면 나을까. - page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