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과 냉전 시기, 굴곡진 역사를 가슴에 묻고 다시 일어선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의 이야기가,
눈부신 발전에도 죄악과 죄의식, 파괴와 폐허를 함께 안고 있는 독일의 이야기가,
도시 전체에서 묻어난 옛 제국의 영광과 상처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오스트리아의 이야기가
가만히 제 가슴에 스치며 진한 여운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제 발길이 머문 곳도 있었고 새로운 곳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행이 저에게도 기억과 유럽 도시 사이의 산책과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지닌 역사만큼이나 긴 사유 속에서 거닐었던 여행.
그래서 좀처럼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었습니다.
우리와는 닮은 꼴이 많은 나라 '폴란드'.
저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유독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알려진 오시비엥침.
사실 아우슈비츠가 지명인 줄 알았는데 이는 독일어 지명이었고 정식 폴란드 명칭은 '오시비엥침'이라는 것을, 이번을 기회로 제대로 불러주어야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추적추적 비가 내렸었고 희생자들의 사진에, 그들의 소지품으로부터 온몸이 뼈저리게 아프곤 했었는데...
그들도 살아있을 때는 이름이 불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죽고 나서는 숫자와 물건으로 남았다. 우리도 그들을 숫자와 물건으로 기억한다. 역사의 이름 모를 피해자의 운명이란 참 슬프다. - page 38
우리의 '서대문 형무소'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베를린에서 학과 수업 때 홀로코스트를 분석할 기회가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독인 학생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 의식은 오시비엥침 수용소 견학 후에 극적으로 높아진다고 한다. 독일 학생이 아니어도 비슷할 것이다. 외부인인 우리도 깊은 한숨을 쉬게 되고 말투와 생각이 비장해졌으니 말이다. 역사를 제대로 논하려면 폭넓은 체험은 필수다. - page 50
아이뿐 아니라 저도 또다시 방문을 하며 오롯이 새겨보려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만큼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해보면 인물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도 다채로워지고 깊어진다. 감정 이입은 시민의 덕목이자 여행자의 필수 도구이다. - page 289
아는 만큼 보이고 보면 더 알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 여행의 묘미도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거듭되는 영광과 몰락, 파괴와 폐허의 흔적에서 벗어나 공존으로 도시가 건넨 메시지.
"다 사람 사는 곳이라네."
이젠 우리의 도시가 건네는 말들에 귀를 기울일 때였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