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대귀족 드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된 '쥘리엥'.
"내가 자네의 신분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의해 두게. 그것은 언제나 보호자나 피보호자 모두에게 불행하고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거든. 자네가 내 일에 싫증 나거나 혹은 내게 자네가 필요 없게 될 경우에는, 자네를 위해 피라르 사제의 교구와 같은 훌륭한 교구를 하나 주선하기로 함세.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 page 29
하지만 출세를 위한 욕심은 여전하였기에 부정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 라 몰씨에겐 딸 '마틸드'가 있었는데...
어쨌든 그녀는 어여쁘다! 쥘리엥은 호랑이 같은 눈초리를 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녀를 차지하고 말겠다. 그런 다음 이 집을 나가버리면 그만이지. 누구든 나의 도망 길을 방해하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 page 78
워낙 거만하고 냉랭했던 그녀였었는데
마침내 나는, 가난한 농군인 나는, 귀부인의 사랑의 고백을 얻어냈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주체할 길 없어 그는 별안간 이렇게 소리쳤다. - page 103
사회의 말단에 위치한 남자에게 그녀가 먼저 사랑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녀에게 쥘리엥은 일종의 하급자로,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나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행동이 마치 혁명자인 양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녀도 임신을 하게 되면서 쥘리엥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게 되고 사랑을 갈구하게 됩니다.
후작은 자신의 딸이 공작부인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분노에 찼지만 그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그처럼 재주가 뛰어나며 가문의 성을 자신보다도 자랑스러워하던 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들의 관계를 허락하게 됩니다.
하고 끝나면 좋을 것이...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우리는 혼돈으로 내닫고 있는 것이다. - page 300
한 통의 편지로부터 폭풍우가 몰아치게 됩니다.
'드 레날 부인의 편지'
쥘리엥은 그길로 드 레날 부인에게 달려가 권총을 겨누게 됩니다.
두 번의 총성.
다행히 드 레날 부인의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그는 그대로 헌병들에게 잡혀 감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사형 선고를 받게 된 그.
쥘리엥은 드 레날 부인이 자신의 총알로 죽음을 맞이하였고 자신의 사형 역시도 덤덤히 받아들이던 찰나,
"이보세요...... 저는 상소하라고 애원하러 왔어요.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 줄은 알지만......." 눈물에 목이 메어 부인은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용서를 바라신다면 즉시 사형 선고에 대해 상소하세요." - page 388
마틸드 역시도 그를 사형에 면하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 보지만 결국 그는 사형이 집행되었고 쥘리엥이 떠난 지 사흘 후, 드 레날 부인은 자신의 아이들을 포옹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실재했던 사건에서 단서를 얻어 구상된 소설이라 하였습니다.
가난한 청년에게 드러난 정열적인 모습.
그의 야망은 결국 헛된 위선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일장춘몽으로 그의 생이 마감됨은...
마냥 비판할 수도 동정할 수도 없는, 우리의 모습이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제목의 '적과 흑' 상징성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해석은 적색은 군직을, 흑색은 성직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저에겐 적색은 그의 출세를, 흑색은 그의 파멸을 의미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멸시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겠소? 나는 한때 야심에 차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것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때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지요. 지금은 아무 희망 없이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어떤 비겁한 짓을 한다면 이 지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꼴일 것입니다......" - page 415
쥘리엥의 이 말이 참 오랫동안 남은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