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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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후위기'란 말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냥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동식물들도 조금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경각심을 갖게 된 요즘.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란 말...

아니, 이제는 기억이 아니라 공존해야 함을 느끼며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이 책은 기후위기의 희망이 될 생명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희미해지는 계절을,

사라져가는 존재를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 쓴 생명책

사계절 기억책



무심코 그린 '상모솔새 그림'.

이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와 좀 더 새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그려나가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새를 관찰할수록 지식을 넘어 지혜의 싹이 조금씩 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먼 곳으로 새를 보러 다니기보단 주로 주변의 새들을 만난다. 새가 궁금하면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라 이렇게 한번 눈을 뜨니 얼마나 많은 새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새를 알고 나면 새가 둥지를 트는 나무와 숲이 귀하게 느껴진다. 새끼 새를 기르는 과정을 보면서 곤충을 비롯한 온갖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를 살아가게 만든다는 진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 page 10 ~ 11

생명과 생명 간 연대를 알게 되었다는 저자.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과 조화로운 삶에 대한 과거의 성찰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습니다.

순천만에 월동하러 오는 겨울 철새 '흑두루미'.

보존을 위해 전깃줄을 없앴고 교란의 원인이 되는 비닐하우스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왜 그토록 흑두루미만 대접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흑두루미는 생태계의 '우산종'이다. 흑두루미가 잘 살 수 있는 서식 환경은 다른 종도 함께 보존하는 효과를 가져오니 기준을 흑두루미에 맞춘 셈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에다 공생의 마음까지 스며든 공간이 순천만 습지다. - page 27 ~ 28

그리고 이어진 붉은 여운이 물든 하늘을 나는 흑두루미 떼를 바라보니 이렇게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자만이 마주할 수 있는 멋진 광경임에 새삼 멋진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였던 '새들의 주택난'.

한 다큐멘터리에서 박새 한 마리가 이끼를 잔뜩 물고 주차 금지용 러버콘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러버콘이 붙박이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에 옮겨져 쓰이는 물건이라는 걸 알면 이곳에 집을 짓지 않았을 텐데...

저 역시도 무거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오직 주차 금지를 위한 도구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던 러버콘을 이제는 예사로이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특히 봄에서 여름을 지나는 시기에는 한 번쯤 걸음을 멈추고 혹시나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며 주변을 살필 것 같다. 만약에, 만약에 어떤 신호가 감지된다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 새가 새끼를 기르고 있어요. 우리 함께 지켜줘요.' 이런 글자를 붙이는 건 과연 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발걸음을 멈추는 일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데 발견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늘 지혜에 허기가 진다. - page 100

요즘에 많이 볼 수 있는 '개망초'.

이 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철도를 놓기 위해 미국에서 수입한 침목에 묻어 온 개망초 씨앗이 철길을 따라 퍼져나간, 그래서 못 보던 하얀 꽃이 여름이면 철길을 따라 피는 걸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씨를 뿌렸다 여겨 나라 잃은 설움이 섞인 작명으로 '망국초'라 불렀다가 나중에 '개망초'로 바뀌었다는 이 꽃.

개망초꽃이 들판에 가득 피기 시작하면 나비며 무당벌레 그리고 매미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꽃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풀매미'.



곧 있으면 이들의 떼창을 들을 수 있는데...

기온이 27도 이상 고온일수록 떼창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매미가 그리도 열심히 울어댈 수 밖에 없는데 우리는 거기에다 시끄러운 소음원이라고 딱지를 붙이니...

기후위기는 매미들마저 힘들게 한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진다면 도시의 온도를 낮출 방법을 찾으라는 매미의 하소연으로 들어야 할 것 같다. - page 160

반성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인상적인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창틀에 빗물이 빠지도록 만들어놓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곤충들.

해충이라며 살충제를 뿌리며 죽이곤 했는데...

살충제보다는 자연의 이치대로 흘러가는 게 괜찮겠다 싶었다. 이십팔점무당벌레와 달리 애홍점박이무당벌레는 진딧물, 응애, 깍지벌레를 잡아먹는 익충이라서 내버려 둬도 괜찮단다. 해충과 익충을 가르는 경계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느냐 마느냐로 갈린 셈이다. 그렇지만 지구 생태계 전체로 보면 그렇게 나눌 어떤 근거도 없다. 다만 생태계 균형이 깨졌을 때 해충이 되는데 그 균형을 깨는 주체는 오직 인간뿐이다.

환경윤리철학자 폴 테일러는 '어떤 생명체가 본래적 가치를 지닌 게 사실이라면 그 생명체는 다른 존재의 선에 대한 언급 없이, 그리고 그 생명체가 가질 수 있는 도구적 또는 고유한 가치와 무관하게 그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어떤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 page 174

기후위기와 멸종위기 그 중심엔 '인간'이 있었습니다.

이제라도 자연의 존재들에게 되갚아야했습니다.

그들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는 것, 깊은 유대감으로 그들을 소중히 여길 것을 다짐하며 오늘부터라도 마주하는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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