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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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동안은 '형사'라 하면 '남성'에 포커스가 맞추어지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편견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아무튼 '여형사'라는 점에서 이 책이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형사님!

대단한 경력들이 있었으니... 이제서야 알아뵙게 되어서 죄송할 뿐이었습니다.

프로답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켰던 '박미옥' 형사님.

이제서야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드라마 <시그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괴물>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감시자들>...

수많은 작품을 자문하고, 극의 모티브가 된 형사 박미옥.

여경 무용론과 성별에 대한 모든 편견을 무너뜨리는 그의 실화가 공개된다.

형사 박미옥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 page 10

돌아보면 경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그녀.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 경찰이 되었습니다.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할 때 선발되어, 23세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됩니다.

경찰이 된 뒤 익힌 수준급의 유도, 태권도, 검도 솜씨로 사람들을 압도하며 출중한 검거 실적을 쌓아갔습니다.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범을 검거하며 경사를 달았고, 탈옥수 신창원을 잡는 데 기여한 공로로 경위가 되며 특진을 거듭했던 그녀.

2000년 최초로 여성 강력반장이 되었고, 2002년 양천경찰서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07년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겸임하며 숭례문 방화사건 현장의 화재감식을 총괄지휘했고

2010년에는 마포경찰서 강력계장으로 발령받아 만삭 의사 부인 살인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사건 등을 해결했으며

2011년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을 맡고 본인이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형사 박미옥.

하지만 역시나 존재했던 여자 형사라는 편견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그녀가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도, 공식석상에서 겪어야만 했었던 기자의 빈정거림.

거기에 맞받아친 그녀의 말이 통쾌하였습니다.

"기자님, 제가 강력사건 경험이 일천하다거나 강력계장직을 해 본 적도 없다거나 지금껏 사건 수사경력이 허접하여 강남을 책임질 정도의 실력이 안 된다면, 오늘 기자님 말씀을 깊이 반성하고 듣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력계 경력이 오래되고 강력계장으로서의 경험도 괜찮고 실력도 꽤 인정받아 상위그룹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사람이라면, 오늘 기자님 말씀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알아듣겠습니다. 기자님이 아직 저를 판단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정보 확인 후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 page 51

이런 그녀가 있었기에

삶이란 현장이나 매한가지다. 먼저 가본 자와 나중에 그 길을 걷는 자가 서로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봐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본 자라서 품고 있는 두려움과 안 가본 자라서 끓어오르는 용기를 서로 나누고 자극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평행선처럼 걸어가면서도 같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나란히 바라볼 수 있는 관계를 꿈꾼다. - page 54

무엇보다 그녀의 형사로서의 철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형사인 내 앞에 앉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불안에 휩싸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그들에게 찰나일지라도 마음 놓을 수 있는 한순간을 마련해 주는 것, 진심으로 그와 대화하려 시도하는 것이 결국 형사라는 업의 기본임을 이제는 알겠다.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고, 수사란 결국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도 시작되지 않을뿐더러 기대할 수도 없다. - page 91 ~ 92

애정 없이 범인을 잡는 일에만 성취감을 느낀다면 형사가 아니라 사냥꾼이라며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로부터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2021년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을 끝으로 명예퇴직을 한 그녀.

제주에서 후배 여형사와 한 마당에 각자의 집을 짓고서, 마당 한쪽에는 인간의 선악과 마음에 대한 책들을 가득 채운 서재 겸 책방을 열어둔 채 ...



형사로서 여성으로 인간으로서 마주하게 된 박미옥.

사람들은 종종 내게 인간이 범죄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잔혹한 세계에서 30여 년을 살아왔으니, 세상 무섭고 인간사에 진절머리가 나지 않느냐고 묻는다. 맞다. 나는 언제나 이 세상과 사람이 두렵고 또 애처로웠다. 고작해야 2미터도 되지 않는 사람이 수십 년간 길게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가공할 범죄를 저지르거나 당하는 현장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세상일지언정 인간이 지겹거나 환멸스럽지는 않았다. 그 속에서도 사람이 주는 희망을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 page 221

오랜 세월 아픔과 두려움과 슬픔이 혼재한 현장에서도 사람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녀.

존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현장이 된 사람보다는 현장이 되기 이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그녀.

그 공간에서 더없는 위로를, 희망을 받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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