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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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은닉』은 '거짓'의 백과사전이다. 거짓의 온갖 양상이 망라된다.

-박찬욱(영화감독)

영화감독 박찬욱 추천.

그 어떤 타이틀보다 우선 시선을 사로잡았었고 그 다음엔 사실 사전지식은 없었습니다.

가치 읽는 모임으로부터 읽게 된 '배명훈' 작가의 작품.

솔직히 어떨지 기대감 가득 안고 읽어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자

마음의 공싱에 관한 이야기다!

은닉



11년을 일하면 1년은 휴가다. 물론 휴가를 받았다고 남들처럼 따뜻한 바닷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1년 동안 호출이 안 올 뿐이다. - page 11

그는 킬러다.

언제나 경계에 서 있는 그의 휴가 5개월째 흐릿하고 검은 물체로부터 쇳소리가 들려오게 됩니다.

목소리...

삶과 죽음의 경계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꼭 만나봐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좋군요. 지금처럼 과묵하게 처리해주시면 더 좋겠군요. 아, 물론 고객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실 일은 없습니다. 그저 멀리서 잠깐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나중에 이쪽에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저에게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뭐가 보이셨는지. 눈에 들어온 대로 솔직하게 알려만 주시면 그 뒤에는 저를 다시 볼 일도 없을 겁니다." - page 17

그저 연극 한 편을 보고 소감을 말해주면 된다다는 조직의 지령.

그리하여 그는 완전히 시커먼 얼굴을 하고는 올로모우츠를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랑페의 결백>이라는, 어느 나라 원작인지조차 알 수 없는 밀실 추리극을 보게 된 그.

'뭘까. 도대체 뭘 보고 오라는 걸까. 보이는 대로 말하라니.'

자신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영혼이 지워질 수도,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는데...

밝아진 무대 위로 눈을 돌렸지만 딱히 건질 만한 게 없었던 그 때.

'저게 뭐지?'

무대 왼편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침대 위.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시체 연기를 하는 그녀는 얼마 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연방 권력서열 3위의 실력자 정무권의 숨겨진 딸인 '김은경'이었습니다.

그의 첫사랑...

하지만 사실상 이미 죽은 목숨인 여자 은경이...

살아 있다! 무대 속의 무대 속의 무대 속에서. 머나먼 세상의 끝 삶과 죽음의 경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드리워진 무대 위에서, 은경의 몸이 생존의 무게를 죽음의 동작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아직도 그대로야! 예전 모습 그대로.' - page 23

'그녀를 보았다'는 것은 곧 그녀가 제거된다는 의미.

그는 연방의 검은 그림자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천재 정보분석가이자 공식적으로 조직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조은수'에게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죽어 있어도 죽어 있지 않은 사람.

조은수 역시도 삶과 죽음의 경계...

자취를 감추려해도 도저히 감출 수 없데 된 영혼의 흔적은 결국 노출되게 되고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도록 폭발적으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수백 개의 가짜 취향을 남기는 '디코이'와 오직 진짜 취향만을 걸러내는 '디코이 저격수'의 뒤뇌 싸움과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지는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은 세 사람.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은 그때 이미 이 모든 게 시작됐던 건지도 몰라. 세상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던 ㄱ거라고. 그런데 우리, 어쩌다 이렇게 하나같이 다 처량한 신세가 됐을까.' - page 252

소설의 초반에는 뭔지 모를 긴장감으로 두근거리며 읽게 되었는데 점점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에서 표현했던 문장처럼

순간 맥이 탁 풀렸다. 팽팽하게 조여져 있던 긴장의 끈이 가운데쯤에서 툭 하고 끊어진 기분이었다. - page 103

아쉬움이 조금 남았었습니다.

만약 이 소설을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면 그때는 흥미롭게 읽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벌써 출간된지 10년이 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흥미로웠던 건 삶의 죽음의 경계에 놓인 인물들, 그 속에서 거짓과 진실, 실제와 환상에 대해 마주하게 된 인간의 본성까지.

그것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없던 악마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잠재해 있던 악마를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악마가 아니라, 나라는 개념이 발생하기 훨씬 전, 생명의 보다 근원적인 부분에 잠재해 있던 악마를 불러내는 일. 중추신경계 어딘가에 남겨진 기억이 아니라 유전자 안에 새겨진 기억들. - page 242

그래서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악마는 스스로 악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천사는 혹시 자신이 바로 그 악마가 아닐까 평생을 고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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