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
그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중·고교 과정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책 읽기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걸 모르겠으니 읽었다고 하기가 껄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럴 확률이 만분의 일이지만, 행여 다른 이가 그 책을 읽겠다고 하면 적극 만류하게 된다. "읽지 마! 읽어봤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고!"
이게 꼭 이 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전'이 다 그렇다. 억지로 읽으면 읽히기는 하지만, 정작 작가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고 만다. - page 7
너무나 공감된 이야기.
그럼에도 그는 우리에게 말하였습니다.
저자의 의도를 모른다고,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고전 읽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국어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그런 걸 꼭 알아야 할까? 책에서 자신이 관심 깊게 볼 만한 지점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 힘들었던 세 권짜리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동안 내가 '안나 카레니나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날까?'를 상상하며 지겨움을 떨쳐냈듯이 말이다. 그렇게 해서까지 고전을 읽어야 하느냐, 너무 비굴한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고전을 읽고 난 뒤의 이득은 생각보다 크다. - page 9
무엇보다 고전이란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인생철학(노하우)'이 담겨 있다고 인정한 책이니 여러 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고전 한 권을 읽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시인 단테의 《신곡》 부터 인류의 책이라 불리는 《돈키호테》, 현대 작품이지만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든 밀란 쿤데라의 《농담》 까지 13개의 고전문학 작품을 통해 그 안에서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인생의 지혜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권한다. 몇 권 정도라도 원본에 한번 도전해보라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의외로 많으며, 이것이 그 후 세상을 잘 사는 자양분이 된다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들 관심 가져주는 이가 없겠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마다할 세상"이라고 하면 멋있다는 찬사를 한몸에 받지 않겠는가? 올 한 해, 고전의 바다에 빠져보자. - page 285
저도 읽다가 포기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서점에서 멋진 양장에 엄청난 벽돌책으로 존재하기에 선뜻 집어 들고 집으로 모셔왔지만 몇 장 읽고 말았던 이 책.
사실 앞 장을 읽다가 지쳤었는데...
돈키호테가 지어내는 이야기만 해도 양이 상당한 데다 다른 사람의 사연까지 읽어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하지만 그 이야기들도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기에, 마음을 조금만 넓게 가진다면 쉽게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돈키호테》를 읽으면 큰 선물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돈키호테》 원본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거의 없다. 주변에 있는 다섯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아무도 읽은 이가 없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물어봐도 1퍼센트가 안 될 것이다. 보름, 아니 넉넉잡고 한 달 가량만 투자하면 1퍼센트 안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한번 해봄직하지 않은가? - page 58
솔깃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책장에서 꺼내볼까...!
대한민국 1퍼센트에 속해보기 위해?!
자, 이제 결론을 내보자. 방대한 분량만 봐도 이 책을 읽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돈키호테와 함께하는 여행은 고전답지 않게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며, 그 와중에 스토리텔링과 독서의 중요성도 깨달을 수 있으니까. - page 73
저의 중고등학교 때 필독서였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그때도 그랬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읽었을 때...
음...
많은 이들이 명작이라 이야기했지만 저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던...
그런데 저자 역시도 그랬다고 하니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찾아냈다는데...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호밀밭의 파수꾼》 열풍은 우리나라의 살인적인 입시제도가 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어느 대학에 갔느냐로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분명 잔인하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현수(권상우)가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라는 말과 함께 학교를 떠났듯, 폼 나게 그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상상을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이가 과연 있을까. 결국 탈주의 꿈을 이루지 못했기에, 학교 밖으로 나가 어른 흉내를 내는 콜필드를 응원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 page 269
그러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책의 마지막 장면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자. 콜필드는 병원에 입원한 채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이번 9월에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 추궁당한다. 아마도 돈 많은 아버지가 펜시 고등학교에 맞먹는 좋은 학교에 콜필드를 보냈을 것이다. 아이비리그에 가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삶이 별반 어둡지 않으리라는 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이라면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겠다. 콜필드 걱정은 사치다, 우리 걱정이나 하자. - page 270 ~ 271
풉!
웃음이 터지면서 다시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진지한 듯하지만 자신만의 유머 코드가 있었던 서민 교수가 제안하는 서민 식 고전 읽기!
읽다 보니 어느새 책은 마지막 장이 되었고 고전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왠지 지금 당장이라도 한 권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고도》의 저자 사뮈엘 베케트도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
"내가 그걸 알았다면 작품에 직접 써넣었을 것"
이라고!
읽는다고 그 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두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도전하는 것, 자신만의 재미를 찾고 진리를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전 읽기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젠 자신감을 가지고 고전을 마주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