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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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아일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2021년부터 미국 독자 대중 사이에 서서히 화제가 되더니, 이제는 독자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려는 듯 애타게 찾는 소설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로 불리는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

드디어 한국 독자들에게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에서는 출간 이래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자국의 국민 모두가 읽는 소설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영화 「말없는 소녀」 로 제작되어 올해 5월 3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 작품, 읽어볼 만큼 매력 있지 않나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며 소녀를 따라가봅니다.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소녀가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짧고 찬란한 여름

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맡겨진 소녀



일요일 이른 아침, 클로너걸에서의 첫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을 향해 웩스퍼드 깊숙이 차를 달린다. 덥고 환한 날이다. - page 9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는 아빠의 차를 타고 달리며 먼 친척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아주머니로부터 어색함에 주저하며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 page 17

가난한 집에서 아이가 많아 제대로 애정을 받지 못하며 자랐던 소녀는 이제 먼 친척 부부의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집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소녀가 그동안 겪어온 일상과는 완전히 상반되는데...

살뜰한 관심과 배려로 소녀를 돌보는 아주머니.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다정히 마음을 전하는 아저씨.

이들로부터 소녀는 사랑과 다정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내 짧고도 찬란한 여름의 끝자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축축한 밭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언덕들을 내다본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푸르러진 것 같다. - page 81

하지만 소녀는 돌아가는 킨셀라 아저씨를 향해 달리며 외치게 되는데...

나는 손을 놓으면 물에 빠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저씨를 꼭 붙든 채 아주머니가 목구멍 속으로 흐느끼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는 소리를 듣는다. 꼭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때문에 우는 것 같다. 나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 뜬다. 킨셀라 아저씨의 어깨 너머 진입로를, 아저씨가 볼 수 없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 page 98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

소녀의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는 모습이 찡했다고 할까...

특히나 마지막의 "아빠"라는 외침이 왜 이리도 가슴을 울리던지 아이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지면서 책장을 덮기 싫었습니다.

소설 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긴 산책을 갔던 장면이었습니다.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age 73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보이니?" 아저씨가 말한다.

"네." 내가 말한다. "저기 보여요."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 page 75

그 어떤 미사여구가 없어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잠시 한 템포 쉬어갔었습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던 이 소설.

아무래도 곱씹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 감정 잊지 않고...

영화도 꼭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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