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은, 당신 육신이 어떤 재질로 구성되었느냐 그 말이오, 뭐죠?"
"연기요."
"내가 그랬지! 맞아, 맞아! 연기 인간이야. 연기 인간이라고! 연기! 연기! 연기!" - page 14
페네, 라테, 라마 세 할머니가 벽난로에 장작을 태우면서 생긴 연기로부터 33년을 굴뚝 안에서 지내다가 사흘 전 굴뚝 아래에서 들려오던 단조로운 대화가 사라지고 타오르던 불도 꺼지면서 마침내 아래로 내려왔다는 그, '페렐라'.
그의 이름은 세 할머니 이름으로부터 불리게 되었고 신비한 외모와 이로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니 왕궁으로부터 초대를 받게 됩니다.
왕비와 수녀, 시인, 왕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나고 국왕 폐하로부터 새로운 법전을 만들기 위한 편찬 위원회의 세 번째 위원으로 지명을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여기 자리하신 고명한 기사 여러분, 나는 최고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칙령에 의거해, 지고하신 대주교의 추인에 맞춰, 현명하고, 탁월하며, 뛰어나신 페렐라 씨께 사랑하는 우리 조국을 위한 새로운 법전의 집필을 온전히 맡아주십사 청하게 되어 대단한 명예로 생각합니다.
상하기 쉬운 육신과 연약한 감각을 지닌 어떤 사람이 우리의 피, 우리의 야심, 우리의 개인적인 관심, 우리의 당파성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어쩔 수 없이, 불공정하게, 두려움없이 그런 일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도 사람임을 잊고 법전 궁극의 목표인, 만인의 평등한 이익 추구라는 이 위대한 기획을 떠맡을 수 있겠습니까?
이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 불순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숭고한 불에 휩싸여 모든 감각의 자기 중심적인 작동을 중단시키고 무화하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 page 119
그러던 어느 날.
황혼 녘에 페렐라를 태운 마차와 수행단이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너무도 황당한 일이 벌어져 모두가 아연실색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왕궁 하인들의 우두머리인 알로로가 간밤에 사라진 것.
그에겐 도시에 사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은 이틀 전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에 비해 너무나 들떠 보여서 당황하였고 그러다 초조한 모습을 보인 아버지 알로로.
지하의 거대한 납골당 아래, 옅어지는 연기 사이로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바닥에, 넓게 평평하게 퍼진 잿더미 사이로 아직 여기저기 석탄불이 붙어 있고, 바닥에서 2미터쯤 되는 천장에는 쇠사슬 하나가 늘어뜨려져 있다. 거기서 십자가 형태로 까맣게 탄 몸통이 대롱대롱 매달려 수평으로 천천히 비틀리며 흔들리고 있다. 함부로 이어 붙인 두 개의 나무 기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잔재일 뿐이다. 알로로. - page 192 ~ 193
알로로의 죽음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던 중 알로로가 자신처럼 가벼워지고 싶어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페렐라.
이때부터 그동안 페렐레를 추앙하던 군중들이 돌변하게 되는데...
"살인을 저질렀어요!"
"우리 모두를 불에 태우려 했어요!"
"왕궁 지하에 불을 질렀어요!"
"방화범입니다!"
"살인자!"
"비겁한 자!" - page 217
모욕과 저속한 손짓, 음탕한 소리, 경멸과 멸시의 말을 그에게 퍼붓는 이들.
특히나 겨우 세 살이나 되었을까 한 어린애의 행동으로부터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머리들이 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참혹하고 기괴한 놀이를 천진난만하게 찾아냈다. 사람들은 문과 창문에서 경멸적인 비웃음만 날리다가, 그 벌레들의 잔인함이 광적으로 고조될 때마다 "좋다! 잘한다!"라고 외치며 더 자극해댔다.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된 조난자는 이리저리 힘없이 휩쓸리기만 했다. 극도로 가벼운 그는 상대가 어린아이라 해도 전혀 대항할 수가 없었다. 놀이가 벌어지는 길 한복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조롱의 현장이 되었다. 그 불쌍한 얼굴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왜?" - page 236
법정에 이르게 된 페렐라.
그의 최후는 어찌 될까......
'가벼움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일러주었던 '연기 인간'.
불에 타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죽음이 삶이 되는 현상인 연기.
페렐라가 상징한 건 '사라짐-죽음'을 '나타남-삶'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도 죽음을 삶으로 바꾸며 존재하라고, 죽음을 통해 삶을 살아가라고 권유한다.
'죽음을 삶으로 대체하고, 사라짐을 통해 나타나라.' - page 302
그러면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