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삶 클래식 라이브러리 2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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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릴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뒤라스.

무엇보다 이번 이 소설은 뒤라스적 세계를 예고한 초기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꼭 읽어봐야겠다 생각되었습니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많은 작품을 써 낸 작가인 뒤라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하였습니다.

가족 관계가 주는 불안과 절망의 변주,

초기 대표작으로 들여다보는

뒤라스의 작품 세계!

평온한 삶



소설은 프랑스 남서부 시골 마을의 뷔그 농장에서 살아가는 스물여섯 살의 '프랑신 베르나트'가 화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20년 전 쫓기듯 프랑스로 와서 뷔그 농장에 정착해 살아가는 베르나트 가족.

이들에겐 부모의 무기력, 프랑신과 니콜라 남매의 절망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근원은 바로 프랑신의 외삼촌인 '제롬'이었는데...

그런 제롬은 니콜라와 싸우다 크게 얻어맞고 열 번째 날이 시작되는 밤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는 제롬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나 티엔의 죽음과는 멀게, 우리가 늘 상상하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와도 멀게 느껴졌다. 그 죽음은 밤이 막 시작되는 무렵에 일어난 듯했다. 이제 제롬은 끔찍하지 않았다. 그는 죽었다. 다시 말해 죽음의 위협에서 영원히 벗어난 사물이었다. - page 29

제롬이 죽은 뒤 클레망스는 자기가 뷔그에서 계속 살 수 있을 테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일말의 애정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아야 함을 깨닫고는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이 필요했던 그들은 클레망스에게 노엘은 두고 가라고 하였고 바보 같은 클레망스는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한번 우겨 보지도 않고 노엘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남은 이들의 모습...

시간이 갔다. 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심지어 이제는 영혼과 피까지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절대 나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나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법조차 잊었고, 행복을 꿈꾸지만 진짜 행복이 닥치면 짓눌려 버릴 몽상가, 방탕한 인간이었다. 제롬이 죽고 나니 클레망스가 남았다. 클레망스가 떠나고 나니 노엘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의 가난이 남았다. 스물네 해 묵은 우리의 무기력이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했고, 우리가 불가능한 삶을 살아갈 운명을 지녔다고 계속 믿으려 했다. - page 41

그리고 2년 전 니콜라가 결혼한 뒤로 뷔그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뤼스가 딱 니콜라가 자기를 잊지 않을 만큼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니콜라와 뤼스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기에 장례식 당일 저녁에, 클레망스가 떠나고 난 바로 다음 날에 뤼스가 뷔그로 돌아왔는가...

어쨌든 뤼스는 막 제롬을 죽인 니콜라를, 클레망스가 떠나면서 얻은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하는 니콜라를 곧바로 원했고 니콜라 역시 뤼스에게 다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뤼스는 몇 개월 전 뷔그에 와서 살고 있는 티엔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정작 티엔은 프랑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9월이 시작될 무렵 니콜라가 제안한 소풍을 다녀온 뒤 또 하나의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뤼스는 프랑신의 집에 발길을 끊었고 니콜라는 며칠 밤이고 뤼스의 집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만나 주지 않는 뤼스...

집을 나가던 저녁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클레망스.

"그날 난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어. 노엘을 갈라놓을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어. 페리괴에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럴 이유가 없었다고! 용서 못 할 일도 아닌데, 나는, 그래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 다들 내가 마음에 안 드니까, 그래서 날 쫓아낸 거야." - page 92

니콜라에게 클레망스 얘기를 했고 노엘이 있으니 클레망스가 집에 있는게 낫다고 답해주었던 니콜라.

클레망스가 돌아온 뒤 사흘 동안 뷔그에 나타나지 않았던 니콜라는 시신으로 발견하게 되는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클레망스가 철로 위에서 기차에 깔려 죽은 니콜라의 시체를 발견했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마치 죽은 새 같았다. - page 95

두 번의 장례를 치른 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프랑신.

보름 동안 혼자 바닷가에 머물며

나만 여전히 남아서 아직도 이것을 안다.

안다는 것, 모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고 한들, 점점 거대해지고 그 빛이 점점 더 삼킬 듯이 밝아지는 파도로 일어서는 저 공허를 마주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 page 122

상념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권태의 밑바닥에서 새로운 권태를 마주하게 되고 점점 분열에 다가가게 된 프랑신은 다시 뷔그로 돌아가게 됩니다.

평소처럼 지에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티엔을 다시 만나고 새로 온 소작인들과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만 달랐다. 여행 가방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나는 피곤했고, 뷔그에 다가갈 때는 허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더 가야 하낟면 밤새도록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배고파지지 않고, 계속 이정도로 따뜻하다면, 내 젖은 구두가 길에 마찰하는 똑같은 소리가 계속 들린다면, 나는 그럴 수 있었다. - page 175

또다시 무던히 살아갈 프랑신의 모습.

그 삶의 모습이 '평온한 삶'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사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나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권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권태롭다. 언젠가 권태롭지 않은 날이 오겠지. 머지않았다. 나는 필요조차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평온한 삶이 오고 있다. - page 174

묵직한 한 방이었습니다.

결국 평온한 삶에서 자주 마주하게 된 '권태'.

권태 속에 권태를 벗 삼으며 살아가는 삶이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하다는 사실이...

깊은 슬픔과 고독 속에서 위로를 받는 이 아이러니와 함께 다가와 깊은 여운이 남았었습니다.

그리고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을, 평온하다는 말이 지닌 의미까지도 ...

참 많은 생각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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