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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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재미있는 거장>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이 작가분의 전작 『화재의 색』을 읽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에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피에르 르메트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 소설은 자신이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그림을 그리며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관통하는 3부작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그린 『오르부아르』,

전간기를 그린 『화재의 색』,

그리고 이번 작품인 제2차 세계 대전을 그린 『우리 슬픔의 거울』까지.

대미를 장식할 이 소설은 또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 기대하며 책장을 펼쳤습니다.

뒤틀린 삶을 바로잡기 위해 내달리는 평범한 영웅들

그리고 비참한 피란길의 프레스코화

우리 슬픔의 거울



전쟁이 곧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시들해져 있었고, 누구보다도 쥘 씨가 그랬다. - page 13

1940년 4월 6일 독일군이 프랑스로 쳐들어온다고는 했지만 아직은 몸소 느껴지지 않는 여느 때와 같은 날.

파리의 레스토랑 라 프티트 보엠 주인이자 주방장이기도 한 쥘 씨와 초등학교 교사이자 퇴근 후 집 앞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 루이즈.

그런데 <의사 선생>이라 불리는, 늘 정오경에 와서는 신문을 가지고 자리 잡고 신문을 읽기도 하고, 거리를 내다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물병을 비우기도 하다가, 루이즈가 금전 등록기를 정리하는 2시경이 되면 자리를 떠나는 그 티리옹이 갑자기 4주 전,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당신의 벗은 모습을 보고 싶소.」 그가 말했다. 「딱 한 번만. 그냥 보기만 하고 다른 것은 안 해요.」 - page 16

성적인 부탁이 맞기는 했지만, 그것은...... 글쎄......

처음에는 어리벙벙했다가 곧 화가 치밀었지만 막상 분노가 가라앉고 말아버린 루이즈는 고액의 금액을 불러 거절의 의사를 보이려 했지만

그녀는 액수가 너무 많아 겁이 났다. 근무를 마친 그녀는 만 프랑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번 적어 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남자에게 돈을 받고 옷 벗는 일을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창녀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과도 일치했다. 또 그녀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벗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병원에서 의사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의 동료 중 하나는 어느 미술 학교에서 누드모델 일을 하는데, 그 일은 단지 지루할 뿐이며 감기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밖에 없다는 거였다. - page 27

금요일 저녁 호텔에서 그와 만나게 되고 그녀 앞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마지노선에서 근무하는 군인 가브리엘과 라울.

전쟁이 일어나는 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힘겨운 건 당직 근무, 통로를 따라 놓인 접이식 탁자들, 비좁은 내무반, 그리고 식수 제한과 더불어 이곳을 잠수함의 내부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 좁아터지고 답답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독일군의 공격에 전선이 무너지면서 그들은 탈영병 신세가 되고 맙니다.

초등 교사였고 에브뢰 항공 클럽의 조종사였으며 변호사였던, 진정한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데지레 미고.

그렇지 않아도 매력적인 이 젊은이의 말솜씨에 다들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역시도 사기를 치다가 결국 정체가 발각되게 되었고 결국 사라지게 되는데...

독일의 침공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 파리 시민들.

같이 피란을 가자는 아내 알리스의 청을 뿌리치고 파리에 남겠다는 기동 헌병대원 페르낭.

하지만 엄청난 비밀이 담긴 가방을 얻게 되면서 불법적인 일에 휘말리게 되고 아내와 연락도 끊기도 마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지...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한 사건이,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고,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닫기도 전에 가브리엘은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질 것이다. 그의 삶은 변하여 다시는 같은 것이 되지 않을 거였다. - page 109

전쟁 통을 가로지르며 인생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으로부터 전쟁으로부터의 비극이 희극과 어우러져 아이러니를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황금빛 석양의 시간도 끝났고, 이제 오를레앙에서 빠져나오는 도로로, 목마른 말들이 겅중겅중 울타리를 뛰어넘는 들판을 따라 가구를 실은 수레들이 가득한 그 대로로 돌아와야 했다. 부유한 이들의 탈출은 이미 며칠 전에 끝났고,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군복 차림의 병사, 농부, 민간인, 장애인 들이 뒤섞인 잡다한 무리를 이루어 힘겹게 걷고 있었다. 한 시청 차량에 탄 어느 유곽의 매춘부들, 그리고 양 세 마리를 몰고 가는 목동 등 도로 위엔 그야말로 온 백성이 모여 있었다.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 page 458 ~ 459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피란길을 '슬픔의, 패배의 거울'이라는 표현함으로 더없는 비극을...

그 와중에서 권력은, 국가 시스템은 어떠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평범하고도 나약한 시민의 삶의 대조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희망'.

'사람'을 통해 힘겨운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또다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마냥 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었던 이야기.

지금 우리의 세계 어디서도 일어나고 있고 그들의 슬픔의 거울이 지속되지 않길 바랄 마음밖에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3부작의 포문을 열었던 『오르부아르』도 찾아 읽어 역사의 큰 그림을 완성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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