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부터 강렬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당신 나이 스물아홉 살에. - page 15
엄마의 은폐 덕분에 아버지의 죽음을 삼십 년 가까지 교통사고로 알고 지냈던 그녀.
"사실은 자살"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살짝 놀랐지만 근사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내 꿈을 대신 이뤘다. 내가 요절할까 봐 본인이 죽어 버린 게 분명했다. 아버지는 '멋진 글' 대신 '멋진 나'를 남겼으니까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 버린 건 아닐까.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사랑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살면서 가끔 필요하고 때로 간절했던 '부정'의 결핍을 나는 이런 식으로 채우곤 했다. - page 16 ~ 17
김애란의 소설로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엄마의 '있음'을 극복했던 그녀.
그렇게 가난했던 유년 시절부터 기자로 살아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슬픔의 자리마다 책을 통해 메워가고 있었습니다.
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슬픔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 환자, 외국인, 반에서 뚱뚱한 남자애, 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 page 9 ~ 10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2005
'자살 유가족', '성폭력 피해자', '암 환자',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상처와 슬픔들을 바라보며 읽는 내내 목이 메어왔었습니다.
나라면 슬픔 속에 허우적거릴 텐데...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 가능하면 몰려오는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맞선다. - page 80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라며 슬픔을 곁에 둔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마냥 슬픔을 외면했던 내 태도를 되돌아보며 슬픔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글이 있었는데...
살아 있는 일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이고 무덤을 만드는 일임을, 슬픔은 그 모든 일을 대표하는 감정이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 page 84 ~ 85
나의 마음에 타인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렇다고 마냥 슬픔이 아니요, 이 또한 살아나아가는 것임을 일러준 이 말이 자꾸만 입가에 맴도는 건... 왜일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슬픔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그녀의 이야기.
읽어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아련히 남은 이 여운을 진한 커피향과 함께 잠시나마 즐겨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