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가슴 아렸던 <고양이 시이를 떠나보내다> 이야기...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 '시이'.
잠자리에 들기 전
"시이야, 잘 자렴. 오늘 하루도 고마웠어"
라는 인사말을 시이가 21살이 되고부터는 사과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며
"오늘도 고마웠어"
라고 건넨 그 마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난 뒤 그녀의 모습.
잔잔히 느껴지는 슬픔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모습에 더 애잔하고도 따뜻함이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시이야, 집에 왔어"
죽은 시이의 시신을 집에 두었을 때는 볼 때마다 몸을 쓰다듬으며 "어쩌다 이런 일이..." 하며 마음이 흔들렸는데 막상 화장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몇십 년 전 포목점에서 준 실크 식탁보를 작은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그 위에 유골함을 안치했다. 시이는 낸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으면 싫어했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곳 바로 앞에 유골함 테이블을 놓아두었다. - page 104
그리고 공감되었던 <30년 만에 신문을 구독하다> 이야기.
저 역시도 굳이 신문을 읽어야 할까, 뉴스는 인터넷을 통해 보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데...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신문 구독하시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신문을 펼치시며 읽으셨는데...
이제는 저도 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 홍수 속에서 '신문'이란 매체는 저에게 동아줄과 같았다고 할까.
아무래도 인쇄되기에 잘못된 정보는 걸러냄은 물론이고 그저 제목만 보고 스쳐지나칠 수 있는 내용을 읽게 되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신문의 매력에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며 아이도 신문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렇기에 책도 그렇고 신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란 저만의 생각도 해 봅니다.
매일 신문을 읽다 보면 인터넷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속도 면에서는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다. 전날 라디오에서 듣거나 인터넷에서 본 뉴스가 신문에 실려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밖의 지역 정보나 기자가 직접 취재한 기사는 흥미로웠다. - page 138
신문 구독으로 인해 불편한 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굳이 있다면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1층의 공동우편함으로 신문을 가지러 가야 하는 것 정도인데, 그런 귀찮음보다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크다. 다 읽은 신문은 종이 재활용품 버리는 날에 내놓으면 무게에 따라 화장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필요 없는 책이나 물건을 박스에 넣어 자선단체에 보낼 때 택배 박스의 빈 곳을 메우는 완충재로 쓸 수도 있다. 옛날에는 신문지로 유리창을 닦으면 더 깨끗이 닦인다고 해서 유리창 닦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읽을 때도 도움이 되고 다 읽고 난 뒤에도 이렇게 활용도가 높다. 이번에 계약이 만료되면 연장할 예정이고 앞으로도 계속 구독하여고 한다. 독거 노인의 집 우편함에 쌓여있는 신문을 보고 사고가 난 걸 알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역시 신문은 상당히 쓸모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 page 141
추억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는 비우는 삶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삶
이런 삶들이 모이고 모여 그녀만의 삶이 되어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역시나 담담하지만 따뜻함을 선사해 주었던 무레 요코.
그녀의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