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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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쭉 눈여겨봐야 할 신인이라는 평을 들으며 대중의 찬사 속에 화려하게 데뷔한 '조나탕 베르베르'.

이 사실보단 제 시선을 끌었던 건

심령술과 마술, 탐정 수사

가 뒤얽혀 다채로운 재미를 엮어 낸 매력적인 소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릴 수 없는 조화가 이루어 냈을 때의 환상과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었기에 소설의 첫 장을 펼쳐들었습니다.

거리의 마술사 제니,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1888년 10월, 뉴욕의 어느 화창한 수요일 아침.

거울 속 자신을 뒤로하고, 필요한 도구가 빠짐없이 준비됐는지 확인한 후 익숙한 붉은 커튼을 젖힙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여성 '제니'.

그녀는 시장 바닥에서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공연을 펼치는 가난한 마술사였습니다.

그러다 프록코트와 흰색 셔츠를 입고 검은색 타이를 맨 차임의, 이곳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흔치 않은 복장을 한 남자가 제니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아가씨, 내가 당신을 고용하려는 이유는 미모나 여성스러움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 둬요.」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아가씨가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니까. 이 일을 입사 시험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직업인데요?」

남자가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앉더니, 헝겊 공 하나를 집어 들고는 손가락으로 현란하게 공을 놀리다가 손아귀 안에 감춰 버렸다. 그러고 나서 손바닥을 뒤집었는데, 빈손이었다.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고 비법을 알아내는 직업.」 - page 21

일자리를 제안하며 거액의 보수를 약속하는 R씨.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에겐 홀어머니, 반려 토끼와 비둘기까지, 네 식구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기에 결국 그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가 명함을 꺼내어 제니에게 내밀었다. <핑커턴, 최고의 사설탐정 회사>라고 흘림체로 인쇄된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아래에는 검은색 잉크로 왼쪽을 보는 커다란 눈이 그려져 있었고, 바로 밑에 <우리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리 회사에 온 걸 환영하오. 시험을 통과했소.」

이번에는 그가 제니에게 손을 내밀었고, 제니는 소심하게 그 손을 잡았다. 그가 힘차게 악수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로버트 핑커턴이오,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리다.」 - page 43 ~ 44

경찰이 확보하지 못하는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는 핑커턴 사무소.

그곳에서 제니가 맡은 사건은

「폭스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소?」 - page 58

큰언니 리아, 둘째 마거릿, 막내 케이트로 이뤄진 3인조 폭스 자매는 망자와 소통하는 능력을 내세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성을 떨치는 심령술사였습니다.

「이 거리 끝에만 해도, 서로 마주 보는 심령주의 살롱이 두 군데나 있다오. 진정한 전염병이지. 핑커턴에는 그 병을 고쳐 줄 의무가 있고. 그 고약한 폭스 자매는 40년 전에 자신들의 종파를 창시했는데, 그걸 끝장내려면 그들의 사기극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길밖에 없소.」 - page 60

심령주의 교단을 창시하고 금은보화를 쓸어 모은 40여 년간의 비밀을, 그 교묘한 속임수를 밝히는 사건을 맡게 된 제니.

제니는 핑커턴 탐정 회사의 지침에 따라 위조 신분을 써가며 수사 대상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무엇 하나도 쉽지 않은 위기의 상황.

하지만 우리의 제니는 정면으로 맞서며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과연 제니는 수십 년간 이어진 수수께끼를 밝혀낼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저명한 사설탐정이 이름 없는 젊은 마술사에게 이렇게 큰 사건을 의뢰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니와 함께 위험천만한 대모험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건 실존 인물과 사건들이 등장과 '제니'라는 인물로 인해 더 몰입하면서 읽었습니다.

「마턴 양,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우월한 점이 무언지 아시오? 우리가 늘 갈리는 그 지점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건 아주 간단하다오. 여자들은 배우기 위해서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거지. 우리에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놀라운 뭔가가 있소. 공감이라고.」 - page 454 ~ 455

서서히 밝혀진 비밀.

그리고 이들로부터 제니 역시도 삶의 흐름이 바뀌게 되는데...

「당신이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해도, 아버지는 늘 당신과 함께했어. 당신이 연습을 할 때마다, 당신이 공연을 할 때마다, 당신은 늘 그분의 일부를 전달했어. 하지만 이제, 그분을 더 나은 세계로 떠나도록 놔줘야 할 때지. 이곳으로 그분을 데리고 오는 것은 그분을, 또한 우리를, 특히 당신 자신을 벌주는 것과 진배없어. 나는 기꺼이 당신이 그 무게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겠지만, 당신만이 그 무게를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 page 599 ~ 600

늘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행위 하나하나를 정당화하고, 마술이라는 예술을 행하면서 완벽을 추구하고자 했던 제니.

진정한 마술사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녀의 어깨에 있던 무게를 떨치는 모습에서 진정한 박수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마술사와 심령술사는 한 끗 차이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토대로 하기에 닮은 듯하지만 달랐던 이들.

의외의 조합이라 여겼지만 오히려 더 조화로웠던 탐정, 마술사, 심령술사 이야기.

책의 두께감을 모를 만큼 몰입하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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