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평범한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날 그녀는 문득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여느 날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그날 밤 시작된다. - page 7
세 아이의 엄마인 '페리'는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마, 좋은 주부, 좋은 시민, 현대적이며, 세속적인 무슬림인 그녀.
초호화 파티에 초대되어 딸 데니즈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차가 정차한 사이에 기껏해야 열두 살쯤 돼 보이는 거지 소녀들이 차 한 대마다 앞에서 10초 남짓 머물렀다가 다음 차로 옮겨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행히 파란불이 들어오고 차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해 페리 역시도 액셀러레이터를 막 밟으려는 순간.
차 뒷문이 순식간에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녀의 핸드백을 체어 가는 것이 백미러로 보였고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차에서 뛰어내려 그들을 쫓아가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꼬마 도둑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부랑자는 가소롭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 뒤 핸드백을 뒤집어 하나씩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갑 속에 있던 것들 중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감춰 두었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보여 주지 않았던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으로부터 그녀는 과거로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몇 장 남지 않은 옥스퍼드 대학교 시절의 사진이었다. 아주르 교수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 - page 46
페리는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엄마와 종교에 회의를 가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술집과 이슬람 사원만큼이나 서로 어울리지 않았기에 잦은 다툼과 충돌은 그녀를 점차 소극적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아이일 때 진짜 아이로, 청춘일 때 진짜 청춘으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많이, 아주 많이 앞서서 살아야 했다. - page 38 ~ 39
집 안에 휘몰아치는 사상과 감정의 회오리로 페리는 혼란에 빠찌게 되고 결국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가진 채 성년이 되어버립니다.
이스탄불을 떠나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페리는 그곳에서 쉬린과 모나를 만나게 됩니다.
종교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비판하는 무신론자 쉬린.
히잡을 쓴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모나.
종교와 무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페리.
이들은 서로 논쟁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유대감을 깊게 나누며 영혼의 단짝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신에 대해 강의하는 '아주르'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페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저자의 이야기.
세상에서 역할이라는 건 계속 바뀌는 것이다. 원자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삶의 형태는 원이고, 원 위의 모든 점은 중심에서 등거리에 있다. 그 중심을 신이라고 부르든, 사랑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전혀 다른 뭐라 부르든 중요하지 않다. - page 553
여성 인권, 종교 문제, 사회적 혼란.
단순히 튀르키예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에 읽으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 주었습니다.
과거로부터 나아가는 그 한 걸음.
그 '용기'와 '이해'로부터 시작됨을 기억하며 무엇보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분쟁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곤 하였습니다.
진한 여운이 남았던 이 소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페리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건네며...
책장을 덮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