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 page 7
분명 서울역에서 KTX 기차표를 끊을 때까지는 파우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것을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해하던 찰나.
"염......영숙......이에요?" - page 8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동물의 음성 같은 어눌한 말투로 자신이 지갑을 주웠고 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갑을 돌려준다는데도 뭔가 불안하고 다른 걸 요구할까 두려움이 번졌던 염 여사.
곰의 목소리를 지닌 사내에게 다가가는데 낯선 사내 셋이 그를 둘러싸 파우치를 빼앗으려 하고 필사적으로 파우치를 지킨 그의 모습을 보고 노숙자이지만 뭔가 특별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이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청파동 골목 편의점을 하는 염 여사.
야간 알바를 하는 이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 염 여사는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한테 왜...... 잘해주세요?"
"독고 씨 하는 만큼이야. 게다가 나 힘들고 무서워 밤에 편의점 못 있겠어요. 그쪽이 일해줘야 해요."
"나...... 누군지...... 모르잖아요."
"뭘 몰라. 나 도와주는 사람이죠."
"나를 나도 모르는데...... 믿을 수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선생으로 정년 채울 때까지 만난 학생만 수만 명이에요. 사람 보는 눈 있어요. 독고 씨는 술만 끊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 page 50
느릿느릿한 말투, 굼뜬 행동, 곰 같은 사내.
그런데 그와 있으면 그동안 터놓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며 한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보람 있다는 걸 체험했고, 자기에게 그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어제도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독고 씨를 생각했다. 그에게 가르쳐주듯 차분히, 천천히, 말하고 움직였다. 어쩌면 노숙자 같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은 그렇게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아무런 사회와의 끈도 없다고 느끼던 자발적 아싸인 자신이 무언가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독고 씨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다. - page 80
저 역시도 독고 씨를 통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위로도 받았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에서 우리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이 이야기.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 page 252 ~ 253
힘겨운 시대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 특별한 편의점으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편의점.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 page 243
오늘은 편의점에서 '옥수수수염차'를 사 음미한 뒤 『불편한 편의점 2』를 읽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