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의 인문학 - 아주 사소한 이야기 속 사유들
박홍순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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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개인적으론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곤 합니다.

연말이라 그동안 문자로만 안부를 전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설레임과 아쉬움으로 맞이하는 12월이면 마냥 가볍고도 즐겁게 지내고픈 1인입니다.

우선 '수다'라는 말에 끌렸습니다.

친구나 동료, 또는 지인들이랑 일상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며 가볍게 넘기고 금방 잊어버리곤 하는 그런 수다를 이 책에선 조금 더 들여다보면서 인문학적, 철학적 탐구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야말로 가볍게 읽으면서 인문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저 없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먹방, 꼰대, 줄임말, K팝, 음모론, 보수, 진보...

일상의 수다 속 소재에서 뻗어가는 인문학 이야기!

수다의 인문학



본문에 들어가기 전 '모래알'이란 단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래알이란 단어를 들으면 흔하고 사소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 "부서져버린 모래알처럼" 등과 같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덧없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것처럼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한 알갱이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우주를 본다"

라는 문장을 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부터 저자는 이야기하였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가 있다. 모래를 있게 한 원리가 곧 세계를 만들어낸 원리이기도 하다. 비슷한 의미에서 정지한 듯 보이는 일상의 짧은 시간에는 견고한 사회구조를 만든 오랜 역사가 녹아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작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절실한 삶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과 사회를 만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 page 7

우리가 친구들고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는 동안 하는 자잘한 이야기, 사소한 불만 등 열띠게 말하다가도 그 자리가 끝나면 일상의 수다로 치부되는 그 '수다'로부터 그 이면의 역사적인 맥락이나 사회구조 이야기의 지평을 확장해 보고 나아가 철학적으로 깊어진 인식까지 나아갈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책의 목차는 이러했습니다.



목차만 보더라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먹방, 꼰대, N포세대, K팝, 음모론, 진보와 보수 등으로부터 인문학, 철학적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니 정말이지 인문학과 철학은 어렵지 않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자리에 가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오곤 합니다.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

이 말로부터 프랑스 화가 알베르 기욤의 <막간극>에서 해석해 보고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으로부터 삶에서 일과 여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며

"여가의 현명한 이용은 문명과 교육으로 가능하다. 평생 장시간 일해 온 사람이 갑자기 일하지 않게 된다면 따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상당한 양의 여가 없이는 최상의 많은 것에서 차단된다. (중략)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는 법이 없다. (중략) 농부들의 무도회는 외진 시골을 제외하곤 사라졌지만, 그들을 도야시켜 주던 그 충동은 여전히 인간의 본성 속에 남아 있음이 분명하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버렸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보았었습니다.

직업을 위한 교육이 중요한 만큼이나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여가 교육도 절실하다. 어떤 분야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람을 넘어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 직접 행위 주체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차적으로 사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미룬다면 바보짓이다. 먼저 민간 차원에서의 여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할 일이다. - page 85

그리고 읽으면서 뜨끔했던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

'신동엽'이라는 이름과 함께 누가 먼저 떠오르는지 묻는다면 저 역시도 개그맨 신동엽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에피소드로 《신동엽 전집》의 해프닝이 그려지면서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자가 전한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미친 듯이 정신과 육체를 뒤흔들어대는 그 헛것을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벗으로 느낀다. 오히려 언제든지 뒤쳐지거나 탈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대중매체를 대하며, 거기에 기꺼이 온몸을 맡긴다.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고자 한다면 고독해져야 한다. 내 안에서 성찰하고 시인의 감성을 만나고자 한다면 외로워져야 한다. 최소한 밤의 시간만이라도 자기 안을 고독으로 채우자. - page 105

무조건적으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멀리하자는 말이 아닌 여가의 균형을 찾는 일이 필요함을.

사색이나 문학적 감흥을 통해 내면을 깊고 풍요롭게 하는 독서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어떨지가 결국 앞서 이야기했던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없을까?"의 해결책 중 하나였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읽어내려가면서도 내면에 조금씩 쌓이는 교양에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이 책.

덕분에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한 발 더 들어가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 역시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다 떠는 것에 눈치가 보였다면 이젠 맘껏 수다 떨며 그 이면의 인문학의 지평도 넓혀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고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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