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간판과 지표들, 풍경들, 마스코트들로부터 원래 의도한 바도 있겠지만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같이 사색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이 책.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경의중앙선' 이야기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배차 간격이 길고 승객이 많아서 앉아 가기 어려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이 노선.
이런 지옥의 문산행 경의중앙선에서도 여름 한정으로 유일하게 좋은 순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창밖의 휑한 철로 풍경을 한참 지나치다 보면 어느 순간 열차 칸 전체가 녹음에 휩싸이는 구간(강매역 부근)에 천천히 들어섭니다. 차창이 빈 곳 없이 푸른 이파리들로 가득 차는데요. 녹음에 유리창의 푸른빛이 덧씌워져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풍경입니다. 역사 내에 서있던 순간부터 내내 기다려오던 청명한 비상구의 빛입니다. 열차는 아주 잠시 동안만 멈춰있을 뿐입니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짧은 순간 동안 늘 내릴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지만 아직 내린 적은 없습니다. 굳이 비상구의 밖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끔은 비상구의 바깥이 아니라 비상구를 비추는 그 푸른빛만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이 닫히면 혼잡한 머릿속을 차창 너머에서 본 무성한 푸른빛으로 비우고... 그래야 아직 남은 20분을 더 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런 도피처로서의 초록빛이 주는 내면의 안식이,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 열차입니다. - page 161
그러고 보면 저도 지하철을 탈 때면 잠시 지상으로 나와 한강을 가로지를 때 한없이 마음을 놓곤 했는데 자연이 주는 내면의 안식이 무심코 저에게도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무엇보다 이걸 발견하고 혼자서 재미있어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즐거움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기분이 들어 용감해집니다. - page 117
소소한 즐거움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아이의 시선으로, 호기심 가득히 안고 길을 나서보는 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