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모임을 통해서 읽게 되었던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

그전까지는 이 직업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책을 읽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터라...

그의 강력추천이라는 책에 바로 손을 뻗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가슴이 참... 찡했고 쉽게 마침표가 찍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손은 다음 이야기를 향해갔고 마지막 이야기를 만난 뒤엔 그 감동에 헤어나오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금 되짚어보면서도 느껴지는 따스함 속 위로와 용기.

그렇게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어봅니다.

"안녕하세요,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에서 나왔습니다."

남들 눈엔 지워야 하는 흔적이더라도, 우리는 기억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삶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입고 있는 상복에서 희미하게 향냄새가 났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다. 남에게 민폐가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니다. - page 11

삶의 목표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20대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날, 얼마 전 우연히 본 분위기 좋은 일식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자 들어갑니다.

그러다

"저기요, 그거 상복이에요?" - page 15

옆자리의 남자가 말을 건넸는데 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늠이 되지 않게 항상 상복을 입고 다닌다고 말합니다.

"아까 매일 상복 입는다는 말, 정말이에요?"

"매일 입어. 그래야 익숙해지거든. 뭐든 습관이 되면 별일 아니고."

"사사가와 씨 혹시 장의사예요?"

"아니야. 난 청소일을 하고 있어." - page 18

넌지시 사사가와 씨는 와타루에게 청소 아르바이트를 해 보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일회성 아르바이트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럼 어딜 청소하는데요?"

"돌아가신 분들이 살던 곳을 청소하는 거야. 유품 정리를 하기도 하고." - page 32

그저 단순한 '청소'라 생각하고 시작하였지만 벌레와 고약한 냄새가 가득한 첫 작업 현장에서 와타루는 구토를 하며 뛰쳐나가고 맙니다.

"힘들지? 이게 아무도 모르게 죽은 사람의 냄새야." - page 41

그럼에도 마지막 자존심을 끌어다 청소를 하다 사사가와가 손짓을 합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초밥이 먹고 싶다. 그래도 참자.

이 낙서를 보고만 있는데도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가 난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 와타루.

"청소가 끝나면, 이 방에 살던 누군가의 흔적은 사라지고 다른 누군가가 살게 되지."

"뭔가 허무하네요."

"그런가? 계속 반복되는 일이야. 난 이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라. 하지만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삶의 흔적과 죽음만은 기억할 수 있지." - page 66

그렇게 홀로 고립사한 노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집을 청소하려는 엄마, 같은 집에 살지만 2주가 지나서야 동생의 죽음을 안 형, 남편이 죽고 1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물건을 치우지 못하는 아내, 마지막으로 둘만의 파티를 하고 욕조에서 죽음을 맞은 모녀의 흔적을 지우는 등.

여러 의뢰인들을 만나며 다양한 죽음의 현장을 청소하면서 누군가의 삶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지워가는 이 직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배우고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 해파리처럼 떠도는 삶을 선택했던 와타루.

하지만 죽음의 현장 속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와타루가 진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뼈가 있는 해파리가 되어가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

"열심히 살면 해파리도 뼈를 만난대."

엄마는 갑자기 진지한 말투로 듣도 보도 못한 말을 꺼냈다.

"그게 뭐야?"

"몰라? 옛날 속담이야. 해파리의 몸은 거의 수분이잖아. 그래서 물컹물컹하거든. 하지만 해파리도 오래 살면 언젠가 뼈를 만나서 뼈가 있는 해파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인가봐. 오래 살면 큰 행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뜻."

"그런 말이 있구나."

"한마디로 살아 있으면 되는 거야. 살아가다 보면 너처럼 현재 막막한 사람도 언젠가 소중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 page 264

인상 깊은 구절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굳이 손꼽아보자면

"이 일을 하다 보면 매년 얼굴을 보고 생일을 축하하는 게 아주 특별한 일이란 생각이 들거든. 생일은 참 멋지잖아. 한 해를 제대로 살았다는 증거니까." - page 87 ~88

"결국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진짜 속마음은 평생 모르는 거야. 상대방은 내가 아니니까. 마음속까지 이해할 수는 없어. 머릿속도 들여다볼 수 없지.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이 서로 엇갈리고, 때때로 슬픈 결말을 맞는 거야. 난 항상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있어도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우리는 원래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존재니까."

...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 같은 건 들여다볼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사가와의 말처럼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있어. 말이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다른 무언가로 말이야."

"그게 뭔데?"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사랑이나 착한 마음 같은 게 아닐까? 난 우리 둘이 통하고 있다고,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 - page 182 ~ 183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죽음은 그냥 '점'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점'인 거지. 중요한 건 그 '점'과 '점'을 묶은 '선'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하지만 나는 요코의 죽음에 뭔가 의미를 찾고 싶어서 그 작은 '점'을 계속 혼자 바라보고 있었어."

"...... 오늘 그게 변한 거예요?"

"응. 이제야 계속 쳐다보던 그 점에서 해방된 것 같아." - page 337 ~ 338

'죽음'을 마냥 무겁지 않게 슬프지 않게 그려져 있었기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 이에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 소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느꼈지만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들이 존재하기에 마지막이 마냥 슬프지 않음에 참 감사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