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부터 에두아르 마네에 이르기까지 화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12작품을 통해 명화 속 인물에 얽힌 사건과 시대 배경을 설명하면서 화가의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해 재미있고 친근하게 합스부르크의 역사를, 나아가 서양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 일족의 기원은 의외로 오스트리아도 독일도 아닌, 10세기 말쯤 스위스 북동부의 시골구석에서 등장한 약소 호족으로부터였습니다.
그 호족으로부터 2, 3대가 지난 11세기 초, '합스부르크성 하비히츠부르크'가 세워졌고 여기에서 합스부르크라는 명칭이 생긴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13세기 초, 아직 가난한 시골 호족이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에게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큰 기회가 옵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
빈약한 영토밖에 없는 데다 나이도 55세로 많았고, 재산도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어 보였던, 황제라는 이름만 던져주면 무급 명예직이라도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충성을 바치고, 일이 잘못되어 봤자 다른 제후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루돌프'는 야심과 저력이 대단하였고 결국 스위스 산속에서 오스트리아로 본거지를 옮기며 역사의 무대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포르투갈, 브라질, 멕시코, 캘리포니아, 인도네시아까지 합스부르크왕조의 지배권이었고,
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의 군주를 겸한 사례도 합스부르크가였으며,
카를 5세는 유럽 역사상 가장 많은 70가지 이상의 직함을 가졌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정식 칭호도 '오스트리아 대공 겸 슈타이어마르크 공작 겸 케른텐 공작 겸 티롤 백작 겸 보헤미아 여왕 겸 헝가리 여왕 겸......' 하는 식으로 '겸'이 장장 40번 이상 이어진,
프란츠 요제프가 대관식을 올린 19세기 중반, 제국 말기였을 때조차 영지 면적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 최대가 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인 자신들의 고귀한 푸른 피를 자랑스러워했는데, 다섯 종교와 열두 민족을 수 세기에 걸쳐 통솔하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자신감이 이를 뒷받침했다. - page 12
루돌프 1세의 고군분투로 합스부르크가가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대해졌지만 이들이 황좌를 세습할 수 없게 선제후들이 경계라고 곧바로 탈환하고, 그로 인해 암살당하고, 그러다 또 다른 가문에게 빼앗기고, 이번에는 손자가 되찾고,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고, 증손자가 다시금 탈환에 나서고...
마치 럭비공처럼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를 거듭하다 안정적으로 황위를 차지하기까지 무려 1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년이 더 지난 15세기 말, 독일 왕 겸 신성로마 황제의 황좌를 차지하게 된 '막시밀리안 1세'는 정말 오랜만에 합스부르크가가 배출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혼인 외교를 통해 "넘어져도 빈손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는데 이로 유명한 가훈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누가 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태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가 된 '마리아 테레이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유일한 여성 통치자로 남았다는 건 그만큼의 노력이 엄청났을 텐데...
자신의 딸들을 정치적 카드로 삼은 방식은 어머니보단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마리아 테레지아의 제왕다운 결단도 굉장하지만, 그 이상으로 운명의 아이러니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만약 9녀가 젊어서 죽지 않고 순조롭게 나폴리의 왕비가 되었다면 프랑스 왕비는 재능이 가장 뛰어났던 카롤리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작은 나라의 왕비가 되어 의외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혁명도 어쩌면...... 그야말로 덧없는 역사의 '만약(if)'이다. - page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