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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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5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 매혹의 걸작들>.

오스트리아의 구제실이며 유럽을 지배했던 최고의 가문인 '합스부르크 왕가'.

합스부르크 황제들이 수집한 매혹의 소장품을 보기 전.

이들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아무리 유럽 제일의 명문가라도 그렇지...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650년에 걸쳐 긴 명맥을 유지했다고 하니 반대로 생각하면 이 가문을 모르면 유럽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거 아닐까!

어쩌면 당연히 알아야 했던 이 가문.

긴 명맥을 유지한만큼 인물과 사건이 웬만한 장편소설 못지않게 파란만장할 텐데...

너무나 기대되었습니다.

《무서운 그림》의 저자 나카노 교코가 명화로 들려주는

역사와 인간이 직조하는 화려하고도 피로 물든 세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가 650년사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유럽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서, 주변 국가들과 적극적인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그물 모양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간 합스부르크왕조.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와 인간이 직조하는 화려하고도 피로 물든 세계가 때로는 한없는 낭만을 일깨우고, 때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를 선사하며, 나아가 현대의 유럽 통합과도 겹치는 면이 있기에

자연스레 유럽사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부터 에두아르 마네에 이르기까지 화가의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12작품을 통해 명화 속 인물에 얽힌 사건과 시대 배경을 설명하면서 화가의 이야기를 적절히 배치해 재미있고 친근하게 합스부르크의 역사를, 나아가 서양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 일족의 기원은 의외로 오스트리아도 독일도 아닌, 10세기 말쯤 스위스 북동부의 시골구석에서 등장한 약소 호족으로부터였습니다.

그 호족으로부터 2, 3대가 지난 11세기 초, '합스부르크성 하비히츠부르크'가 세워졌고 여기에서 합스부르크라는 명칭이 생긴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13세기 초, 아직 가난한 시골 호족이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에게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큰 기회가 옵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

빈약한 영토밖에 없는 데다 나이도 55세로 많았고, 재산도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킬 능력도 없어 보였던, 황제라는 이름만 던져주면 무급 명예직이라도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충성을 바치고, 일이 잘못되어 봤자 다른 제후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루돌프'는 야심과 저력이 대단하였고 결국 스위스 산속에서 오스트리아로 본거지를 옮기며 역사의 무대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포르투갈, 브라질, 멕시코, 캘리포니아, 인도네시아까지 합스부르크왕조의 지배권이었고,

한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의 군주를 겸한 사례도 합스부르크가였으며,

카를 5세는 유럽 역사상 가장 많은 70가지 이상의 직함을 가졌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정식 칭호도 '오스트리아 대공 겸 슈타이어마르크 공작 겸 케른텐 공작 겸 티롤 백작 겸 보헤미아 여왕 겸 헝가리 여왕 겸......' 하는 식으로 '겸'이 장장 40번 이상 이어진,

프란츠 요제프가 대관식을 올린 19세기 중반, 제국 말기였을 때조차 영지 면적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 최대가 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인 자신들의 고귀한 푸른 피를 자랑스러워했는데, 다섯 종교와 열두 민족을 수 세기에 걸쳐 통솔하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를 독점하다시피 했다는 자신감이 이를 뒷받침했다. - page 12

루돌프 1세의 고군분투로 합스부르크가가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대해졌지만 이들이 황좌를 세습할 수 없게 선제후들이 경계라고 곧바로 탈환하고, 그로 인해 암살당하고, 그러다 또 다른 가문에게 빼앗기고, 이번에는 손자가 되찾고,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고, 증손자가 다시금 탈환에 나서고...

마치 럭비공처럼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를 거듭하다 안정적으로 황위를 차지하기까지 무려 1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년이 더 지난 15세기 말, 독일 왕 겸 신성로마 황제의 황좌를 차지하게 된 '막시밀리안 1세'는 정말 오랜만에 합스부르크가가 배출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혼인 외교를 통해 "넘어져도 빈손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는데 이로 유명한 가훈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누가 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장녀로 태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가 된 '마리아 테레이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유일한 여성 통치자로 남았다는 건 그만큼의 노력이 엄청났을 텐데...

자신의 딸들을 정치적 카드로 삼은 방식은 어머니보단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마리아 테레지아의 제왕다운 결단도 굉장하지만, 그 이상으로 운명의 아이러니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만약 9녀가 젊어서 죽지 않고 순조롭게 나폴리의 왕비가 되었다면 프랑스 왕비는 재능이 가장 뛰어났던 카롤리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작은 나라의 왕비가 되어 의외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혁명도 어쩌면...... 그야말로 덧없는 역사의 '만약(if)'이다. - page 154



긴 명맥을 유지했던 합스부르크왕조는 막시밀리안의 죽음을 시작으로 프란츠 요제프에게는 차례차례 일가의 죽음이 덮쳐오게 됩니다.

마침내 슬로모션으로 쓰러지듯이 천천히 합스부르크왕조는 붕괴되기 시작하고 체코와 헝가리가 독립하고 새롭게 탄생한 오스트리아공화국은 지금의 형태, 즉 과거의 8분의 1로, 인구는 9분의 1로 줄어든 소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명화를 중심으로 바라본 합스부르크가의 역사.

굵직하게 보았기에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명맥조차 볼 수 없기에 안타까운 합스부르크왕조.

하얗게 불태웠던 그들의 이야기가 아련히 남았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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