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 page 29
아버지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은 '고가 겐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친구이며 신문 기자인 스가이 씨가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랜만이구나. 많이 컸다.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면서?"
"네."
"전공이?"
"제약 화학 연구실에서 유기 합성을 맡고 있습니다."
겐토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대화를 더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한 셈이었지만 스가이는 신경 쓰지 않고 또 물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거냐?"
겐토는 하는 수없이 대답했다.
"요즘은 컴퓨터로 새로운 약을 디자인할 수 있어서 설계도를 보고 약을 만듭니다. 다양한 화합물을 조합해서요." - page 32
아버지는 고가 겐토에게 편지 한 통을 남겼고 그동안 아버지가 몰래 연구를 하던 실험실을 알게 됩니다.
그곳에 간 겐토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란 불치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어떤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편지에 남긴 내용에 따라 약을 개발하려 하지만 의문의 여성과 경찰이 그를 쫓기 시작합니다.
한편 용병인 '조너선 예거'는 불치병 때문에 수명이 수개원밖에 남지 않은 아들 저스틴의 치료비를 위해 어떤 임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전 중인 콩고의 정글 지대로 가서 피그미족의 한 부족과 나이젤 피어스라는 인류학자를 없애라는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과 함께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생물과 조우할 경우 그것 역시 제거하라고 하는데...
그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인간의 유아와 비슷한 생물의 머리는 걸맞지 않게 비대했다. 발달된 전두부가 둥글게 튀어나왔고, 이마에서 턱에 걸쳐서 윤곽이 급격하게 좁아져서 삼각형을 그렸다. 몸집은 세 살배기 어린애 정도였지만 얼굴은 그보다 어렸다. 아직 두개골이 고정되지 않은 신생아의 오밀조밀한 얼굴은 그대로이고 목부터 아래만 성장한 것 같았다.
이 생물이 뭐냐는 의문 따위를 가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인간의 유아와는 크게 다른 특징이 있었다. 좌우 관자놀이 쪽으로 올라간 큰 눈이었다. 눈을 치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서 명석한 의식과 지성이 느껴졌다. 그 날카로운 눈빛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경계인지, 호기심인지, 광기인지, 사악함인지. 예거는 이해 불가능한 존재를 앞에 두고 공포를 느꼈다. 이것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발견하자마자 즉시 죽여라.
정신을 차린 예거는 본 적이 없는 생물에게 총구를 향했다. 그리고 물었다.
"뭐야, 이건?" - page 240 ~ 241
알고 보니 뇌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장애아라는 말이 아닌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우리보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백악관은 아이가 군사용까지 포함한 모든 암호가 해독될 만큼 우수하기에 존재에 두려움을 느껴 예거를 포함한 일행들에게 제거 명령을 내렸지만 결국 자신들마저 죽이고자 한 백악관.
예거는 이 아이를 무사히 탈출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를 버리면 자네 아들은 살 수 없네."
일동의 시선이 팀 리더에게 향했다. 예거는 어린이의 생명을 놓고 거래하는 게 화가 났지만 겨우 평정을 가장했다.
"아들을 구할 방법이 있다고 했지?"
"그렇네. 내 친구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 특효약을 개발하고 있어. 1개월 이내에 완성되네. 그 약을 먹으면 저스틴은 완전히 나을 게야." - page 302
예거와 겐토, 두 사람의 운명이 교차되면서 강대국의 추악한 음모와 인류의 미래가 얽힌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오랜 세월 서로를 죽이며 살아온 인간 존재에 대해 작가가 던진 묵직한 메시지.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한방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제노사이드(대학살).
일본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를 바라본 그의 시선.
자신이 사는 좁은 마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열등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시나징'과 '조센징'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사람들이 그런 모순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변변치 못한 머리인 것에 중학생이었던 겐토는 그만 질려 버렸다. - page 170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면 그들 안의 잔인한 감정이 폭발하여 살인자로 돌변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포와 아픔은 어떤 것일까? 일본인의 무서움을 일본인은 알지 못한다.
...
한신 대지진 때는 재일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 일본인이 서로 도왔다고 겐토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앞으로 올 손님이 부디 일본인을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어리석으면 후손이 고생하기 마련이었다. - page 171
여전히 남아있는 그 감정과 시선.
이젠 시대가 변하였다...
이것이 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전히 반복되며 벌어지는 제노사이드의 양상.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위선적인 태도.
자신이 소속된 민족 집단의 우월성을 믿으며 다른 민족을 열등하다고 느끼는 인간.
인간은 서로 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인가...?
묵직이도 울리고 또 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