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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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이자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한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팬인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백조와 박쥐』를 읽고는 가독성은 물론이거니와 '사회파 추리소설'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저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둘 작품을 찾아 읽다가...

이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은 『짝사랑』, 『아내를 사랑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이미 우리에게 선보였던 작품이었습니다.

짝사랑...

외사랑...

아내를 사랑한 여자...

아무튼 혼자만의 사랑일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일본 최고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작품이 다시금 우리 앞에 나왔다는 건 지금의 시대에서도 그때의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일 텐데...

과연 무엇일까...?!

'내 아내를 사랑한 그녀는 남자였다.'

젠더에 대한

심도 있는 메시지를 담은

걸작 미스터리!

외사랑



11월 세 번째 금요일.

대학생 시절 함께 땀 흘린 미식축구부 부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동창회 날이었습니다.

예전에는 2차, 3차까지 갔었지만 이제는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고 다들 가정이 있어 시간과 돈 모두 자신만을 위해 쓸 처지가 아니었기에 제각기 집으로 가게 됩니다.

에이스 쿼터백이었던 '니시와키 데쓰로' 역시도 귀가하던 중 인파 너머로 물끄러미 이쪽을 보는 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 사람...... 히우라 아냐?" 데쓰로가 중얼거렸다.

"역시 그렇지? 저 녀석, 뭘 하는 거지?" 스가이가 손을 흔들었다. - page 17~ 18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히우라 미쓰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드러내는 분위기는 데쓰로의 기억과는 확연히 다른 그녀.

나이를 먹어서 그래 보이는 것 같지는 않고...

미쓰키는 작은 노트와 볼펜을 꺼내 뭔가를 적어 데쓰로에게 보여줍니다.

어디 가서 얘기 좀

그래서 데쓰로가 사는 아파트로 가게 되었고 미쓰키는 세면실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는데...

"어...... 누구야?" 스가이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미쓰키의 답은 없다. - page 29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한 남자.

몸집이 작은, 처음 보는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이야. QB." 미쓰키가 드디어 목소리를 냈다.

완전히 남자 목소리였다. - page 30

황한 데쓰로에게 미쓰키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러니까" 미쓰키가 말했다. "설명이 필요해. 하지만 두 가지는 이해해줬으면 해. 첫 번째는 이 얘기가 거짓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것. 두 번째는 나란 놈의 고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이야."

"나란 놈......" 데쓰로는 미쓰키가 내뱉은 단어를 따라 읊조렸다. 사정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맞아." 미쓰키가 계속 말했다. "나란 놈은 남자였어. 너희들과 만나기 훨씬 전부터." - page 35 ~ 36

미쓰키의 충격적인 고백.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저지른 죄는 살인죄야. 사람을 죽였어." - page 61

같은 바에서 일하던 호스티스를 상습적으로 스토킹한 남성을 얼마 전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데쓰로와 그의 아내이자 미식축구부원이었던 리사코는

"나는 말이야......" 리사코도 목소리를 목소리를 높인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미쓰키를 봤다. "미쓰키의 인생을 어정쩡하게 끝내고 싶지 않아. 네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야. 이대로 교도소에 들어가면 어떤 답도 낼 수 없어. 아니면 철창 안에서 나는 남자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만족해?"

"그럼 어쩌란 거지? 무책임한 소리 좀 그만해." 데쓰로가 의자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리사코는 등을 꼿꼿이 펴고 미쓰키를 곁눈질하면서 몸만 데쓰로 쪽으로 살짝 틀었다.

"책임은 내가 질게. 그럼 되지?" 선언하듯 말했다.

"책임이라니...... 어떻게?"

"미쓰키를 경찰에 보내지 않을 거야. 누가 뭐라든." - page 73

친구로서 미쓰키가 경찰의 수색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하지만 지난 시절 동료이자 기자인 하야타가 살인 사건을 쫓으면서 데쓰로 일행과 대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돌연 사라진 미쓰키.

미쓰키를 찾아 나선 데쓰로는 상상도 못할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소설은 '젠더'와 함께 살인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상을 파헤치며 또다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뫼비우스 띠의 앞뒤와 같아요."

"무슨 뜻이죠?"

"일반적인 종이의 경우 뒤는 언제나 뒤죠. 앞은 영원히 앞이고요. 양쪽이 만날 일도 없어요. 하지만 뫼비우스 띠는 앞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면 어느새 뒤가 나와요. 즉, 양쪽은 연결되어 있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뫼비우스 띠 위에 있어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어요. 또 각자가 지닌 뫼비우스 띠도 하나가 아니에요. 어떤 부분은 남성적이지만, 다른 부분은 여성적인 것이 평범한 인간이에요. 당신 역시 여성적인 부분이 얼마든지 있어요. 트랜스젠더라 해도 똑같지는 않아요. 트랜스섹슈얼도 다양하고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그 사진 속 인물도 육체는 여자인데 마음은 남자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다 담을 수 없어요. 내가 그러하듯." - page 421

아직까지도 젠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니 저 역시도 선뜻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말입니다.

그렇기에 더 이 소설이 울림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뫼비우스의 띠'

정말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해 주었습니다.

"리사코 앞에서 더는 여자 모습을 하고 싶지 않아. 남자로서 그녀를 대하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 데쓰로를 향해 킥을 날렸다. "자기 아내에게 어떤 놈이 그런 소리를 하면 남편은 틀림없이 화를 내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그럴 마음이 안 생기네."

"내가 진짜 남자가 아니라서? 맘대로 떠들어라. 이거냐?"

"그건 아니야."

"됐어. 알아. 다 내 만족이고 혼자 난리인 거지. 영원한 짝사랑이라는 거야.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소중해."

영원한 짝사랑, 이라...... - page 212 ~ 213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그녀, 아니 그의 마음이 너무나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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