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가운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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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이은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서는 12편의 추리 단편들이 선보였었는데 이번엔 어떨지 또다시 기분좋은 설레임을 안고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 한 통의 전화...

친구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그녀를 위해

나는 이 차가운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나의 차가운 일상



이치노세 다에코를 알게 된 것은 겨우 몇 달 전이었다. 그 몇 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숨쉬지 않는 물체가 되고 말았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만 했다면 어쩌면 그녀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도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아닌 인간의 어두운 면을 엿보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후회는 인간의 가장 형편없는 정신활동이라 생각하지만, 누가 무슨 말로 위로해주든 내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 page 8

1991년 어느 날.

나(와카타케 나나미)는 회사를 그만둡니다.

4년 이상 근무했던 회사에 대해 나쁜 인상만 남은 채 그만 둔 것에 조금 우울했던 그녀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샤오마이 도시락과 캔커피를 챙겨 하코네 행 로맨스카에 올라탄 나.

"웃기지 마."

느닷없이 들려온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

짜랑짜랑 울리는 목소리의 소유자인 그녀의 기세는 평범한 남자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데 결국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치노세 다에코'.

나와 죽이 맞지는 않았지만 여차여차 하다보니 하코네유모토 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동행인은 어디서 내렸는지 온데간데 없고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나와 같이 다니겠다고 합니다.

같이 걸어다니다 아직 학생으로 보일 만큼 젊은데 같이 온 여자의 허리에 팔을 두른, 보기만 해도 두 사람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따스한 광경을 바라보곤...

"......저건 그냥 환상 같은 거야."

얼마 지나 다에코는 굳은 웃음을 지으며 호수를 내려다봤다.

"난 저런 거 싫더라. 딱 달라붙어 가지곤 순 독점욕과 자기 만족뿐이지. 뭐, 이제 한 석 달이면 저러고 있는 것도 끝이려나. 곧 피차 다른 숙주를 찾고 싶어질 거야. 그러면서 어느 한 쪽이 먼저 상대를 발견하면 난리가 난단 말이지. 앞날이 뻔해."

"지금이 좋으면 좋은 거겠지, 분명히."

"어머, 세상에. 저런 게 이상이란 말이야?" - page 19 ~ 20

부자연스러운 다에코의 표정...

하코네에서 돌아온 뒤 얼마 동안 평범하고도 바쁜 나날을 지낸 나.

어느 날,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번 달 24일에 바빠?"

24일, 24일 하고 되풀이해보니 이번 달 24일은 크리스마스이브 아닌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케이크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안 할래?"

엉겁결에 그러겠다고 하였지만 왠지모를 싸늘함이 나를 감쌌는데...

12월 19일, 나는 청서된 원고를 전달한 뒤 '블랙컴'으로 갑니다.

가게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고 카운터 안에서 리키야가 경쾌하게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리키야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여기서 파티 하잖아?"

"응. 사장님이 오라고 해서 알아."

"올 거야?"

"응."

"그래." - page 27

갑자기 다에코와 한 약속이 떠오른 나.

가게 공중전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에코 친구이신가요?"

"...... 그런데요."

"다에코는 없어요."

"아직 퇴근 안 했나요?"

"병원." - page 28

수화기를 쥔 채 전화서 너머의 침묵.

머뭇머뭇 상대방에게 물었더니

"자살, 미수."

...

"자살은 어떻게......?"

"중독이에요."

"무슨 중독이죠?"

"많이 취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분이 집까지 데려다 줬대요. 그런데 그 뒤 그분이 다에코의 집에 가봤더니 그땐 이미 인사불성이었다는군요." - page 29 ~ 30

어떻게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는 나.

얼마 동안 수화기 구멍을 멍하니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오니 우편함에 크고 두꺼운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보낸 사람은 내 '친구' 이치노세 다에코.

봉투 안에 든 것은 워드프로세서로 쓴 원고 뭉치.

맨 위에 연필로 크게 '수기'라고 휘갈겨 쓰여 있었습니다.

수기 속엔 마음속에 차가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있고...

수기를 보면 다에코가 자살할 이유를 볼 수 없는데...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단 한 번의 만남이었던 그녀는 왜 나에게 수기를 보낸 것일까?

와카타케 나나미는 그 진실을 찾기 시작합니다.

누나, 미안해.

이게 있는 한 난 가망이 없어.

이 차가운 뭔가가, 어떻게도 할 수 없게 차가운 뭔가가 있는 한.

이제 알겠지, 누나.

너무 늦었어. 사회공헌 같은 건 못 해. 그런 걸로는 멈출 수 없어.

미안해, 누나.

정말 미안해. - page 154 ~ 155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이 소설.

아쉬움이 있다면 처음에 뭔가 있을 것 같은 긴장감과 깔끔한 마무리보단 허무함이 남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이 소설 속 각 인물들이 가진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묵직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실을 뒤죽박죽으로 버무려 넣은 허구였던 '수기'.

모든 걸 태워버리고 싶었던 이야기들.

결국 태워지면 없어지는 것이 될까...

아니, 이미 써 내려갔기에 그 씨앗이 누군가의 글 속에 스며들었을 것이었습니다.

아...

책장을 덮어도 쉬이 이 감정을 정리할 수 없음에...

마지막 문장을 외치며 남은 감정을 날려보려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다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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