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펼치자마자 질문이 있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도 알고, 원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각 개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고 한들, 우리는 올바르게 파악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 page 15
이 질문에 대해 체계적이고 주목할 만한 답을 내놓은 인물.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그리스에서 활동한 사상가인 '플라톤'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세상의 이면에는 이에 대응하는, 불변이고 영원한 원본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이데아'라고 명명했다. 이데아는 '외적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참된 것'이라는 뜻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는 변하지 않으며 영원하고 우리가 경험을 통해 아는 세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 page 16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인지하는 세상이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상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그의 관점은 기독교 세계관과 맞아떨어져 한동안 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17세기 유럽은 갈릴레이, 케플러, 하비, 데카르트, 뉴턴 등 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이성적 능력을 발휘하면서 이천 년 만에 세상을 바꿔 놓게 됩니다.
자연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포괄적인 방법을 처음 제시해 근대 과학의 문을 연 인물 '갈릴레이'.
'실험'과 '관찰'로 기존에 알려진 자연의 여러 물리 법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내고 실험으로 얻어낸 결과를 수학적 공식으로 환원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수학과 자연 철학을 결합하려 한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데카르트'는 기존 철학을 회의적으로 보고 이성만으로 보편적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합리주의 철학 사조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와 상반된 경험주의 철학이 등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데카르트가 근대철학 및 과학의 창시자라고 주장하며 그의 철학을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이유도 단지 그가 프랑스인이어서가 아니다. 설령 많은 부분이 틀렸을지라도 이성의 역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주장을 그가 펼쳤기 때문이다. - page 107
그리고 '뉴튼'.
실험이나 관측으로 자연을 본 갈릴레이나 이성의 올바른 사용으로 진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올곧이 뛰어넘어 실험과 관측을 바탕으로 자연 법칙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수학 방정식으로 구현해 자연의 미래마저 예측할 수 있는 진리를 알아낸 천재인 그.
세상 곳곳에 뉴턴의 입김이 스며들어 있다. 오늘날의 문명은 올곧이 그의 몫이다. 그가 세상을 새롭게 이해한 덕분에 새로운 인류 문명이 창출됐다. - page 128
이렇듯 인류 문명은 뉴턴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됩니다.
'칸트'도 뉴턴 물리학의 자연과학같이 철학도 증명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철학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비판철학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감성과 오성, 주관과 객관, 생각과 존재 등 모든 대상을 이분적 요소로 바라보고 있어, 이는 세계를 통일된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정적인 칸트의 철학에 변화하는 세상을 추가한 '헤겔'.
20세기 물리학 혁명의 선봉자 '아인슈타인'.
뉴턴의 세계관이 자연의 참된 진실인지 논쟁이 일어나게 되고 19세기 말 고전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련의 예기치 않은 발견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을 일으키게 됩니다.
시공간이 변화한다는 상대성 원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내비게이터'.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 주는 위치 정보 시스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허구가 아니라 과학이다. - page 201
그 후엔 원자의 세계를 다루는 양자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함께 고전물리학을 대치하는 현대물리학의 한 축이 되고 물질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현대입자물리학까지.
그야말로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근원 물질로써, 누군가는 숫자로 이해하려 했고, 누군가는 관찰로, 누군가는 치열한 사고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이들 모두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 결국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세상이치 역시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돌고 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