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의 뒤를 쫓는다. 그놈은 영악하고 재빠르다. 한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의 목줄을 틀어쥐고 우악스럽게 꺾어버리는 찰나를 놓치기 십상이다. - page 9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랍시고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유명 여성 잡지의 에디터에게서 '소울'이 없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듣던 그 '최민호'.
그러다 그가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남자의 마지막 순간을 찍게 되고 월간지 편집장으로부터 앞으로도 이런 사진이 있으면 꼭 연락 달라는, 인정을 받게 되면서 '죽음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광버스가 가드레일을 뚫고 육 미터 아래 강변으로 떨어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
헝클어진 퍼즐처럼 뒤죽박죽이 된 차 안을 향해 망원렌즈를 들이밀던 그때, 뷰파인더에 그것이 잡히게 됩니다.
소용돌이 모양의 막대사탕.
사탕을 보는 순간, 소용돌이무늬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뒷골이 당겨왔다. 내가 술 취한 딱따구리라 부르는 편두통이 엇박자로 머리통을 쪼아댔다. 딱따닥, 따다다닥, 딱따라닥닥. 그에 맞춰 식은땀이 샘솟았다. 어지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누가 목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고무호스를 쑤셔넣는 기분이었다. - page 14
빌어먹을 소용돌이.
소용돌이 공포증은 꼭 그악스러운 빚쟁이 같다는 생각을 하던때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여보세요? 최민호 씨 핸드폰입니까?"
상대방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그렇게 물었다.
"네, 그런데요?"
귀에 익은 말투였다.
"나다, 길태. 기억나나?"
...
"유민이가 죽었다. 이유민이 그 자식이 죽었다, 어제." - page 15 ~ 16
지난 오 년 동안,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깝게 지냈던, 아니 사바나의 창공을 맴돌며 썩은 고기를 찾는 독수리처럼, 피 냄새에 이끌려 기웃기웃 다가가는 하이에나처럼 늘 죽음을 기다렸던 그에게 유민의 부고를 들은 순간,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유민은 왜 죽었을까? 다른 녀석들도 올까?
혹시....... 혹시...... 그놈이 다시 돌아온 건 아니겠지? - page 18
민호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안주시 안주읍 광선리를 향해 가면서 나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1991년 여름, 그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민호.
그곳은 광선리였고 광선 국민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온 서울 놈한테 먼저 다가오는 친구 한 명 없었던 그에게 처음으로 다가와 준 '김창현'.
창현은 그를 데리고 자신의 비밀 아지트에 데리고 가고 그곳에서 '독수리 오형제'를 결사하게 됩니다.
김창현(건), 최민호(혁), 이유민(뼝), 박길태(용), 조명자(수나).
방과 후 독수리 오형제는 모여서 탐정놀이도 하며 우정을 쌓던 중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순순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 연쇄살인사건으로 이어지게 되고...
자신의 친구 유민 역시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또다시 연쇄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사인은 '익사'.
하지만 이들이 익사가 될 만한 장소도 아니었고... 기묘한 이 사건의 전말.
유민을 제외한 남은 친구들은 무사히 살아돌아갈 수 있을까?
쉼 없이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작가는 우리를 몰아놓았습니다.
소설은 25년 전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무섭고도 비극적인 모험을 겪은 후 주인공들.
시간이 지나도록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얽매여 있었지만 결국 다시 뭉쳐 '함께' 과거를 떨치고 한발 나아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생은, 산다는 것은 이리도 고통스럽다.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page 493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길고 긴 도로를 바라봤다. 이 길의 끝이 행복일지 불행일지 알 수는 없었다. 옛날의 우리가 미래를 짐작할 수 없어 짜릿한 나날을 보냈던 것처럼, 사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모험에 몸을 맡기면 신나게 흘러가는 법. 나는 길의 끝 따위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행복인지 불행인지 벌써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명자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나는 삶의 뒤를 좇아 가속페달을 밟았다. - page 528
흥미로웠던 소설.
하지만 자꾸만 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한 소리.
어디어디 숨었니?
아아아아아아.
역시나 무서운 건 무섭다는 거.
싫어....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