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에 미남으로 소문난 관노비가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얼굴 윤곽이 뚜렷한 외모 덕에 멀리서도 뭇 여성들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는 소문이 난 박씨 노비, 줄여서 '박비'.
그는 누구 말도 듣지 않는 전라도 관찰사 이극균의 수양딸 '이비'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내였습니다.
백마를 타고 뛰어다니는 왈패 이비 아씨의 경호를 맡아 흑마를 타고 달리는 박비.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둘은 서로를 연모하게 됩니다.
하지만...
순탄치 않음을 익히 알기에...
한편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한 화가에게 죽은 왕후의 그림을 그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죽은 왕후를 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소년 왕 성종과 그를 안타까이 여기는 형 월산대군.
그리고 월산대군의 위험한 요구에 고뇌하는 화공 안소희가 얽혀 역사에는 남지 못했던 또 하나의 《몽유도원도》를 그려갑니다.
그러다 결국 비극적인 운명이 시작하게 됩니다.
그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저 천진하게 살아왔던 이비는 자신의 얼굴이 성종의 죽은 왕후, 공혜왕후를 빼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일로 두 남녀의 아련하고도 아찔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지키는 여인을 사랑한 관노비 박비
박비를 사랑한 이비
죽은 왕후를 닮은 이비를 사랑한 조선의 왕 성종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떨지...
(어느정도 예상되는... 하지만 그 끝은 꼭 읽어봐야함을...)
이 사건(?)의 발달이 된 건 분순어사 정훼로부터 였습니다.
정훼가 이비를 우연히 보고 공혜왕후를 닮았다고 전라감영의 미녀는 모두 모으라 한 일과, 이극균이 이를 심려해 박비에게 김시습을 찾아오라 한 일, 그런 김시습의 명령에 따라 박비와 이비가 전라감영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그들을 쫓는 추노꾼들로 인해 헤어질 수 없는 상황의 이 둘의 모습은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프던지...
박비는 그런 이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너무나 소중한 것, 다시는 못 볼 것을 그리워하듯 까슬까슬한 손으로 몇 번이고 그 얼굴을 쓰다듬다 이비를 끌어안았다.
"살아야 한다. 반드시 너만큼은 살아야 한다."
처음이었다. 박비가 이비에게 말을 놓은 것은,
"너만큼은 살아다오."
그리고 이비의 이마에 입 맞춘 것은. - page 60
그런데 사실 이 둘에게는 숨겨진 사실이 있었고 이 지독한 인연들...
박비, 이비, 무엇보다 왕 성종이 아스라이 들려오는 빗소리에 아련히 남곤 하였습니다.
소설 속에는 역사적 인물들도 등장하게 되니 '진짜 이러한 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의문도 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픽션'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그냥 상상 속에서만 즐기는 걸로.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낯설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곤 하였습니다.
또한 조금은 자연스럽지 않았던, 굳이 왜 이렇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 란 의문이 들었던 부분도 없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독자를 이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였기에 마지막까지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소설을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읽어서인지...
더 운치 있고 아련하게 남았습니다.
비와 비.
그 이름이 가슴속 물웅덩이처럼 흔적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