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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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판 덕분에 다시금 만나게 되는 '에쿠니 가오리'.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세련된 문체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모은 특별 컬렉션이었습니다.

'사랑'...

므흣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문예지 데뷔작 「포물선」

가장 에쿠니다운 작품이라 불리는 「선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재난의 전말」

『반짝반짝 빛나는』 그 10년후 이야기 등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9편의 수작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첫 단편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이 그려지다니...

<러브 미 텐더>에서 노인성 치매에 결린 아내가 있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열렬히 사모하는 아내를 위해 스스로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어 밤마다 전화를 걸어주는 남편의 이야기.

아버지는 매일 밤 저렇게,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러브 미 텐더를 흘려보내는 걸까? 기가 막히다 못해 괘씸한 생각마저 들었다. 머가 엘의 사랑이람.

나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천천히 전화 박스를 지나쳤다. 룸미러 속, 초라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점점 작아진다.

"뭐야, 도대체."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page 18

<선잠>에서는 유부남 고스케와 동거하던 '히나코'의 이야기였습니다.

고스케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날 18살 토오루를 토오루는 남동생 후유히코를 데리고 그녀의 초대에 응하게 됩니다.

나는 솔직한 심정으로 말했다. 이 아이들이 오늘 밤의 일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그들이 나와 고스케 씨의 반년 동거 생활을 입증하는 천진난만한 증인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 page 33

그 후 토오루와 사귀게 된 히나코는 여전히 고스케를 잊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 떠나보내려 합니다.

식사 후 우리는 호지차를 마시면서 퀴즈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어색하면서도 정겹고 행복한 밤이었다. 내일 고스케 씨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난 전화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통화하고 그만 끝내자고 마음먹었다. 호지차는 뜨겁고 뜨겁고 향긋하고 새록새록 맛있었다. - page 95

이 사랑은 야릇한 선잠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었던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변호사와 바이올리니스트 남매가 탄생할 줄 알았지만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난 남동생은 스무 살에 귀국했을 때 바이올린을 그만둔 데다 게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남동생이 가끔 바이올린을 키는 곳 '기묘한 살롱'이란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려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나날.

상상도 안 해 본 생활이었지만, 불행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것도 인생이려니 여겼다.

귀국한 남동생이 게이라는 사실도 그 무렵에 알게 됐다.

"상관없지?"

동생의 말에 나는,

"상관없어."

라고 대답했다.

인생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모든 것이 나의 바깥쪽에서 흘렀다. 저항할 수 없었고, 내가 저항하고 싶은지 어떤지도 알 수 없었다. - page 291 ~ 292

연초록으로 흔들리는 버드나무 아래 잔잔히 울려 퍼지는 노래가 고요히 제 가슴속에서도 들려왔었습니다.

그 외에도 벼룩에 물리고 나서 세상이 달라졌다는 <재난의 전말>, 신문에 실린 부고를 보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간 <시미즈 부부>, 헤어지자는 아내에게 세제를 건네주는 엉뚱하고도 귀여운 남편을 그린 <밤과 아내와 세제>, 세상이라는 기묘한 장소에서 새로운 한 해를 다시 살아내기 위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만나 장을 보는 세 여자의 이야기 <기묘한 장소> 등 모든 작품들이 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에쿠니 가오리'만의 감성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따스히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여운을 즐길 수 있었기에 또다시 들려줄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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