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수상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 깊은 좌절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2007년 3월 말, 캐나다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양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해온 훌륭한 정부 기관 '캐나다 예술위원회'의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동료 예술가들과 하원의사당의 방청인석에 자리 잡은 얀 마텔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즐거웠습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게 됩니다.
문화유산부 장관의 캐나다 예술위원회의 50주년 기념 연설은 시작하기 무섭게 끝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웃을 수조차 없었다. 프랑스에서 중요한 문화기관이 창립 오십 주년을 맞았다면 어떤 기념행사가 치러졌을까? 세련된 전시회가 일 년 내내 이어졌을 것이고, 대통령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으려고 발버둥쳤을 것이다. 구차하게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유럽인들이 문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문화는 아주 매력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세계 여기저기에서 유럽을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유럽이 문화적으로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캐나다 예술가들은 하원의사당의 방청인석에 얼간이처럼 멍청하게 서서, 더 중요한 일을 논의하려는 이들을 방해하는 훼방꾼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곳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초대받은 사람들이었다. - page 23 ~ 24
그리고 이 짧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상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다음 의제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얀 마텔은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습니다.
왜?
자신은 책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책과 고요함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기 때문에
좋은 책을 통해서 스티븐 하퍼 수상에게 조용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좋은 책과 함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소설, 희곡, 시집, 종교서, 그래픽 노블, 아동서 등 어떤 장르도 배제하지 않고 '픽션' 작품을 고르게 됩니다.
그리고 한 통의 편지에는 한 권의 책, 많게는 세 권의 책을 보내게 되는데 이 목록의 책들을 다 읽고 알아야만 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얀 마텔이 편지를 쓴 건 '책 읽기를 권유하기' 위해 쓴 것이기에 우리가 이해하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수상님께 보낸 첫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