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도 1997년 12월 30일을 끝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사형제도폐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생명을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뭐라 단정하진 못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면서 '사형 제도'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정면으로 파헤친 작품이라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사법 제도가 흡사한 일본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음에 선택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사형 제도의 구조적 모순과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일본 추리 문학계를 뒤흔든 문제작!

기대가 되었습니다.

"도저히 신인 작가라고 믿을 수 없다. 주도면밀한 구성과 탄탄하고

이지적인 문장에 읽을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 미야베 미유키

13계단



저승사자는 오전 9시에 찾아온다.

사카키바라 료는 딱 한 번,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들려온 것은 철문을 여는 중저음이었다. 땅이 울리는 것같은 그 공기의 흔들림이 멎자, 감방 전체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옥을 향한 문이 열리고, 미동조차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공포가 흘러 들어온 것이다.

이윽고 잠잠해진 복도를 일렬종대의 발자국 소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와 속도로 돌진해 왔다.

멈추지 마! - page 9

사형수 감방에 수감된 이후 7년.

죽음의 공포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놓인 '사카키바라 료'.

사실 사건 당시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던 그는 어렴풋이 떠오른 영상이라 하기엔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기에...

손님의 뒷모습. 무거운 봉투.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는 다리.

아니야, 사카키바라는 고개를 쳐들었다.

계단이다.

희미한 기억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그렇다. 그때 본인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지금처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 page 13 ~ 14

탄원서를 쓰고 변호사에게 보낼 편지를 열심히 써 내려갑니다.

상해 치사 전과자인 '미카이 준이치'는 2년간 복역한 후 가석방 허가를 받게 됩니다.

출소한 준이치는 자신으로인해 부모님이 피해자에게 위자료와 손해 배상 지불로 엄청난 빚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는 아들이 범한 죄의 무게에 전율하며, 행복했을 무렵의 단란한 가족상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소리 죽여 울어 왔던 것이다.

"울긴 왜 울어."

아키오가 형을 힐난했다.

"다 네 탓이잖아. 울면 용서받을 수 있기라도 할까 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준이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동생 방을 나섰다. 어두워진 아파트 복도를 걸으며 오로지 부모 얼굴을 다시 보기 전에 눈물을 그쳐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 page 36

그러던 중 교도관 '난고 쇼지'가 준이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아무튼,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3개월이 기한이야. 즉 보호 관찰이 끝날 때까지의 기간이지. 내용은 변호사 사무실의 일을 돕는 것이라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면 됩니까?"

"사형수의 누명을 벗기는 거야." - page 50

바로 사카키바라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인데 그렇지않아도 사카키바라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기에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계단'을 단서로 진범을 추적해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사건 현장 그 어디에도 계단의 흔적은 없었고 난고와 준이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사형 집행까지 불과 3개월, 과연 그는 무죄일까?

솔직히 사건이 진행될수록 설마... 설마... 했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에 소름이...

그러면서 사형 제도 및 현대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하였기에 강하게 뇌리에 남게 되었습니다.

먼저 책 제목이었던 '13계단'의 의미가

공소권을 독점한다는 강대한 권력을 쥔 검찰관은 동시에 형 집행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책무가 있다. 특히 극형까지 가게 되면 엄정한 심사를 해야 하며, 그가 작성 중인 사형 집행 기안서는 앞으로 5개 부서, 13명의 관료 결재를 받을 예정이었다.

13명.

그 숫자에 눈살을 찌푸린 검사는, 사형 판결 선고 이후 집행까지 절차가 몇이나 되는지를 세어 보았다. 13가지였다.

13계단. - page 37

사카키바라의 유일한 기억인 '계단'과 사형 판결 선고 이후 집행까지의 절차 '13계단'.

묘한 우연...

무엇보다 '사형 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었습니다.

만약 자기 자식이 살해당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범인이 눈앞에 있었다면 난고는 상대에게 똑같이 갚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적인 보복을 인정하면 사회는 완전한 무질서 상태가 된다. 국가라는 제삼자가 형벌권을 발동시켜 대신해 줘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 복수심이 있고, 그 복수심이 이 세상을 떠난 타인에 대한 애정이며, 그리고 법이라는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한 사형을 포함한 응보형 사상은 용인되지 않을까. - page 180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 page 367

이 외침이 메아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심판대에 오른 '사형 제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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