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이 유튜브 인기 동영상 목록에 뜬 클립 하나를 재생합니다.
'내가 이 구역의 또라이다! 지하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정신병자 등장이요.'
자극적인 섬네일.
영상 속엔 '임산부 배려석'에 어떤 건장한 청년이 떡하니 앉아 팔짱을 낀 채로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핑크 배지를 단 여성과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타고 이 남성이 자리에 앉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부탁하지만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나 참. 아 이 새끼. 애새끼 하나 배었다고 유세 떠네. 야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지 아냐고!"
점점 높아지는 언성. 일촉즉발의 사태.
"내가 강남에 집을 샀다고. 내가! 내가 강남에 집을 산 사람이라고. 알아? 아냐고?" - page 12
뭐지... 이 돌+I인 이 사람.
하지만 낯설지 않은 이 모습은 또 뭐람...
아무튼 영상 속 그 남자의 이름은 '김건동'.
나이 36세로 정말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차라리 1차에서 줄곧 떨어졌다면 손이라도 털고 나오기 쉬웠을 텐데...
애매모호한 희망 고문으로 어느새 국가고시 준비만 10년을 한 김건동.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 서른 후반을 향해 가는데 경력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답이 없어. 답이 없네. 노답이야. 누구 인생인지 참 갑갑하네.' - page 22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명문어학원 실장.
말이 좋아 '실장'이었지 하는 일은 잡일에 원장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는 게 뭐 이러냐.' - page 43
그러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이 닿게 됩니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리운 얼굴들.
다시 만난다는 설렘도 잠시.
동창들은 하나같이 사회에서 잘나가고 있었고 자신만 집도 차도 없는, 계약직에 잡일만 떠안은 거지 같은 커리어에 열등감과 욕망이 그에게 작은 불씨를 키우게 됩니다.
그의 바람처럼 강남에 집을 보유하게 되지만...
결국 집 한 채의 불씨가 모이고 모여 화염에 휩싸이고 파멸에 이르게 된 그의 모습.
'내가 뭘 잘못했어? 쌔빠져라 공부하고 시험 준비하며 십 년을 보내고 회사 다니면서 좀 제대로 살아보려고 한 건데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나쁜 놈이야? 나한테 운전 심부름이나 시키고 갑질한 놈과 성공하겠다는 사람 뒤통수친 사기꾼 새끼들이 나쁜 거지. 난 안 나빠. 세상이 나빠. 세상이 아주 좆같애.' - page 287 ~ 288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내 주변에도 고시 공부만 몇 년 준비하고는 나이만 먹어 어디에도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이가 있기에...
세상 갑질하는 사람은 쉽게 볼 수 있기에 차마 이 책이 소설로만 국한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굴 탓하겠는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한 것이기에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임을.
읽고 나서 개운치 않음에...
오늘은 건동이 누리던 유일한 사치였던 '삼쏘'를 하며 씁쓸한 세상을 향해 소주 한 잔으로 적셔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