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우리의 거울이기에.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무지와 무자비함으로 자칫하면 세상도 왜곡되게 해석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질 수 있기에.
어쩌면 지금까지 주변부로 밀려났던 여성들을 소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판도라, 이오카스테, 헬레네, 메두사, 아마존 전사들, 클리타임네스트라, 에우리디케, 파이드라, 메데이아, 페넬로페.
그녀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줄지 기대되었습니다.
책 제목에서의 '판도라'.
저도 판도라 하면 상자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책 표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서든, 혹은 악의로든 상자를 열지 않았다. 실제로 그 상자는 헤시오도스가 그리스어로 시를 쓰고 난지 2000년이 훨씬 지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에라스뮈스가 헤시오도스의 운문 《일과 날》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까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상자는 없다. 에라스뮈스는 '항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피토스를 옮길만한 단어를 찾고 있었다.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M.L. 웨스트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헤시오도스가 쓴 말을 1m 정도 높이의 저장용 도자기 항아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항아리는 바닥 면은 좁고 너른 입구까지 벌어지는 구조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지 않다. - page 13
어?!
그동안 알고 있던 이야기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쨌든 판도라가 졌다. 왜냐, 상자를 여는 데에는 노력이 드는 반면, 균형이 안 잡혀 삐뚜름한 도자기 항아리 뚜껑을 툭 치거나 부수기는 훨씬 더 쉬울 테니까. 악의를 품고 고의로 상자를 열어보는 의미로 변질한 언어적 이미지는 이미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 page 14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초반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가려졌고 왜곡되었던 그녀들.
왜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지...
질문이 생길 때 - 왜 우리는 여성을 중심에 놓는 그리스 신화를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 그것은 항상 이상한 가정으로 가득 차 있다. 기본적인 믿음이 여성은 이야기의 주변에 있고, 항상 그래왔다는 것이다. 신화는 언제나 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여성은 작은 역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장소에서 여러 저자에 의해 쓰인 신화에 '진짜' 혹은 '진정한' 버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굳어진 믿음 역시 포함된다. - page 357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 전쟁이 벌어지게 만든 그녀, 헬레네.
그녀에 대한 시선도...
아킬레우스를 보라. 모든 게 명확하다. 속도, 분노,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사랑, 명성을 통한 영예 및 불사의 신에 대한 헌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의해 정의되고, 노력하며, 또하나 잃는다. 그런 다음 헬레네를 생각해보자. 혼란스러운 혈통, 다툼의 여지가 많은 어린 시절, 여러 번의 결혼생활 등 그녀가 정확히 파악해 내기 얼마나 더 어려운지를 생각해 보라. 초기의 서사적 전통 중 하나인 그녀에 대한 가장 악명 높은 사실, 즉 그녀가 파리스와 도망쳤다는 내용은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한다. 진짜 헬레네는 다른 곳에 있다. 반면, 전쟁은 비현실적인 존재, 즉 이미지를 놓고 싸운다. 사실, 우리가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녀는 우리에게서 달아나는 것 같다. 그녀는 트로이아의 헬레네, 스파르타의 헬레네, 기쁨의 헬레네, 그리고 살육의 헬레네다. - page 106 ~ 107
입가에 씁쓸함이 남아 있었습니다.